바그너와 니체_결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정신을 위한 책
니체의 시기
제1기: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제2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광>, <즐거운 지식>
제3기: <짜라투스트라>,<이사람을 보라>
자기 자신에의 자유 획득
뒤집어 엎은 경우에는 이 사물들이 어떻게 보일까
인간이 후회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그가 자유롭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은 행위란 승화된 나쁜 행위이고, 나쁜 행위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 좋은 행위이다.
선의 위계를 정신적 에너지의 양적 고찰로 환원
에너지의 대소에 따라 도덕은 선악에 관한 이중의 선사
좋은 행위 - 지배계급
나쁜 행위 - 피지배계급
결정론이 아닌 필연성에 따라서 살 수 있는 사람 - 니체가 찾는 인식자
종교란 잔혹한 일락이다. 이러한 인식은 슬프다. 그러나 사람은 고통없이 인류의 지도자나 교육자로 될 수 없다.
예술작품은 물자체에 따라 영원히 지속하는 것의 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되거나 현상의 전형으로서 현상 이상의 것이 된다.
도달된 자유로움이야말로 예술에 있어서 필연적 최고 성과이다.
자유정신은 기본 성질, 환경, 신분, 직장 등으로부터 그리고 시대의 지배적 견해로부터도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 즉 예외자이고 속박된 정신은 영속하는 사물, 무거운 짐으로 되지 않는 사물, 이익을 가져오는 사물, 희생을 치를 사물, 즉 인습에 대하여 그 근거를 묻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문화의 고리로 된 하나의 필연적인 사슬로 되어, 이 필연성으로부터 일반 문화의 발걸음에서 필연성으로 추리해 가는 것
여자들은 종속당함으로써 지배한다.
나는 의식적이며 고의적으로 쇼펜하우어의 맹목적 도덕 의지에 눈을 감았다. 바그너의 치유할 길 없는 낭만주의에 대해서도
선이란 악이 아닐까? 그리고 신이란 단지 악마의 발명품이거나 악마를 더욱 정교하게 해 놓은 건 아닐까? 모든 건 궁극에는 허위가 아닐까? 또 우리가 기만되었다면 바로 그것에 의해 기만하고 있는 자가 아닐까? 우리는 기만자이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도 좋은지
알고 있는 것
이 책은 무거운 의무의 압박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것이다. 이 책은 세련되고 섬세한 감각을 원하며, 과잉을 요구한다. 시간의 과잉, 하늘과 마음의 과잉된 청명함, 가장 대담한 의미에서의 과잉된 한가함을 요구한다.
오직 침묵함으로써 철학은 존속하는 것이다.
제1장 최초의 일과 최후의 일 - 형이상학
- 개념과 감각의 화학작용
- 철학자가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두 그 근본에 있어 아주 제한된 시기의 인간에 대한 증언에 불과하다.
- 절대적 진리가 없는 듯이 영원한 사실도 없다.
- 형이상학적이고 미적인 시대와 인간의 후예인 즐겁고 현혹적인 오류보다도 엄격한 방법으로 찾아낸 초라하며 보잘것 없는 진리를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것은 훌륭한 문화의 특징이다.
- 신앙의 유래 - 죽은 자는 계속해서 생존한다. 왜냐하면 꿈 속에서 살아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 철학은 예술이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과 행위에 최대의 깊이와 중요서을 부여하려고 하는 데 반하여 학문에서는 인식 이외의 것이 탐구되지 않는다.
- 소위 학문이란 것으로서의 언어- 문화 발전에 있어 언어의 중요성이란, 인간이 언어의 힘을 입고 다른 세계와 맞서볼 수 있는 자신의 세계를 수립한 데에 있다.
- 세계에는 안팎이 없다.
- 하나의 감정은 우리가 그것에 수반되는 사상이 깊다고 여길 때에 깊은 것이다. 깊은 사상이 예컨대 모든 형이상학적 사상처럼 진리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깊은 감정으로부터 한데 뒤섞인 사상소를 제외시키면 강한 감정이 남게 되며, 이것이 그 자체로서 인식을 위한 아무런 보증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강한 신앙이 그것의 강력함만을 증명하되 신앙한 것이 진리라는 것은 증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 쇼펜하우어의 도움없이 기독교나 그 아시아적 동류에 공정성을 부여하는 일을 쉽게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다.
- 계몽의 깃발 - 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 볼테르 3인의 이름이 적힌 깃발
- 모든 신학과 그 투쟁을 제외하면 세계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명백하다.
- 종교와 예술의 <믿는> 행위 - > 논리적 세계의 부정
- 가장 이성적인 인간도 때때로 본성, 즉 자신의 만물에 대한 비논리적인 기본자세를 필요로 한다.
- 생의 가치에 대한 모든 판단은 비논리적으로 전개되고, 불공정하다.
- 자연에 의해 탕진되는 꽃처럼, 자기가 낭비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모든 감정을 초월한 감정이다.
제2장 도덕적 감수성의 변천 - 도덕
- 라 로시푸코 <도덕적 격언과 잠언 Sentences et maximes morales>
- 인간은 자기가 되고자 바라는 것이 되며 그의 지향은 그의 실존에 앞서게 된다.
- 인간은 스스로를 고상한 어떤 것으로 여겨서 엄격한 규율을 스스로에게 짐지웠다.
- 친절의 경제학이란 가장 터무니없는 공상가의 꿈이다.
- 동정은 영혼을 소멸케 한다.
- 악행의 쾌감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 이상의 흔해빠진 일은 없다.
- 영원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게 거짓말을 한다.
- 사형이 살인보다 불쾌하다.
- 종교는 삶에 반해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고 있는 것이다.
- 영혼의 활동과 열정은 허영심으로 뒤덮여 있다. 즉 허영심이란 영혼의 살갗인 것이다.
- 대다수의 사람들은 악하게 되기에는 자기 일로 너무나 바쁘다.
- 자살의 방해 - 우리에게서 죽음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 인간이 효용적, 합목적적으로 된다는 것은 동물이 인간이 된다는 최초의 징표이다.
제3장 종교적인 삶 - 종교
- 인식은 슬픈 것이다. 안다는 건 슬픈일
- 기독교는 인간을 마치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리듯 완전히 압도하고 굴복시켜 침몰시키고 말았다.
- 결국 기독교는 파멸될 것이다.
- 신앙이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
- 어떻게 세상에 죄가 생긴 것인가
- 인간은 자연 속에서는 언제나 아이 자체이다.
- 타인을 위해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성과 환상의 과오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사람들은 더이상 기독교도가 되지는 않는다.
- 기독교 -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그가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 쾌락, 종교, 잔인함의 연합이 그 밀접한 친근성과 공동의 취향에 있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의 주의를 환기 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다.
제4장 예술가와 작가의 영혼에서 - 예술
- 케플러와 스피노자 같은 통달한 천재는 일반적으로 볼 때 그렇게 탐욕하지도 않으며, 정말로 더 커다란 고뇌와 결핍에 대해 법석을 떨지도 않는다.
- 플라톤 - 광기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축복을 안겨준다.
- 인간이 웃는다. 순간적인 불안에서 빠져나와 짧은 동안의 기쁨으로 옮아가는 것을 희극이라고 한다.
- 세상에는 희극적인 것이 비극적인 것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
-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을 탁월하게 만들고 공적으로도 그렇게 여겨지기를 소원한다는 것이다.
- 전자 없이 후자를 갈망하면 - 허영
- 후자가 없는데도 그것을 슬퍼하지 않는다면 - 자만이라고 불리운다.
- 최상의 작가는 작가가 된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 희랍인을 따라 백년 간의 감정의 과장 때문에 언어란 언어는 모두 답답하게 부풀러 올랐는데,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식의 방해가 되고 있다.
- 엄격한 고려와 간결, 단순, 일반적인 감정의 억제와 침묵- 이러한 것만이 효과가 있는 것이다.
- 책은 거의 인간화 된다. 작가는 책이 자신으롭터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독자적인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에 새롭게 놀란다. 그것은 마치 곤충의 일부가 절단되면 그때부터 그것이 제길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 실제로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는 불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호박속의 곤충처럼 모든 존재자의 총체 구속 속에 갇혀 영원화되는 것이다.
- 조용한 풍요 - 지나치게 열중하지 않는다. 생산적인 인간 위에는 그보다 한층 높은 족속이 있는 것이다.
- 볼테르는 자신의 다양한 최대의 비극적 뇌우에도 견딜 수 있는 영혼을 희랍의 절도로 억세할 수 있었던 최후의 위대한 극작가 였다. (독일인 보다 프랑스인이 희랍인의 본성에 유사하다.)
- 학문적 인간은 예술적 인간이 한층 더 발전한 것이다.
제5장 보다 높은 문화와 낮은 문화의 징후 - 문화
정치의 대목표는 <지속>
자유정신은 상대적인 것이다.
- 사물의 척도
1)지속성을 갖는 모든 사물은 올바른 것이다.
2)짐이 되지 않는 모든 사물은 올바른 것이다.
3)유익한 모든 사물은 올바른 것이다.
4)우리가 희생을 치른 모든 사물은 올바르다. - 신과 필역하는 위로는 초연함이다.
- 사람이 인류를 위해 바라는 보다 나은 미래는 모두 여러 면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보다 나쁜 미래이기도 하다.
- 교육에 대한 관심은 신과 신의 배려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는 순간에 비로소 크고도 강력하게 될 것이다.
- 인간성 전체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유의 동물의 한 발전 과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인간은 목적에 대해 합목적적으로 달성하기를 배운다.
- 죽을 운명에 놓인 자는 그가 사랑하고 있을 때 최상의 것을 준다.
- 사람들은 분명히 크고 뚜렷한 것이면 모두 과대평가를 한다. 이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힘을 한가지 영역에 투사하여 자신을 하나의 거대한 기관으로 만들 때 그것이 아주 유익하다는 의식 혹은 무의식적인 통찰에서 유래한다.
- 인간은 습관에 의해 권력에의 의지에 굴복하고 만다.
- 만일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마술에서 자유로왔다면 우리에게는 영원히 상실된 철학적 인간의 고급 원형을 그래도 찾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결코 무의미한 질문이 아니다.
- 괴테 - 인간 최상의 힘은 이성과 학문
- 기억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그저 일정하게 정해진 내용물만을 넣을 수 있는 용기이다. 그 다음으로 여러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기능을 갖고 있는 것 처럼 믿게 하여 실제로도 교제함에 일종의 매혹적인 외관을 덧붙여준다는 점에서 해를 입히는 것이다.
- 먼 장래의 언젠가에는 하나의 새로운 언어가, 처음에는 무역어로서 그런 다음에는 일반 교제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언어로써 만인에게 주어지리라.
- 자신에게서 두 개의 이질적인 힘을 발견할 때 인간은 자신에게서 문화에 관한 최선의 발견을 한 셈이다.
- 우리의 문명은 고요함을 상실하여 새로운 야만으로 끝나리라. 어떤 시대에 있어서도 활동적인 자, 즉 쉬임없는 자가 크게 세력을 떨친 적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명상적 요소의 강화는 인류의 성격에 대해 반드시 시도해 볼 수정작업인 것이다.
- 신중한 저울놀이에 정통해야만 한다.
제6장 교제하는 인간 - 교육
- 복제 - 원본보다 복제를 더 마음에 들어한다.
- 탁월한 정신은 패기에 넘치는 젊은이의 자신에 대한 무례,오만, 심지어는 적의까지도 만족스럽게 여긴다.
- 모욕을 주고 나서 용서를 구하는 일이, 모욕을 받은 뒤에 용서하는 일보다 더 유쾌하다. 전자를 행하는 자는 힘을 표시한 뒤에 좋은 성격을 표시한 것이다.
- 인간들이란 얼마나 고독한 존재란 말이냐!
- 친구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7장 여인과 아이 - 가정
- 최상의 친구는 아마도 최상의 아내르르 맞이할 것인데, 그것은 훌륭한 결혼이란 우정의 재능에 기인하는 때문이다.
- 훌륭한 아버지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 남자들이 가진 자기 모멸이라는 병에 대하여는 영리한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
- 오래 지속되는 결혼 - 서로가 상대방을 통해 사적인 목표를 성취하려 하는 결혼은 훌륭히 결합된다.
- 고귀하고 고상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가장 힘든 투쟁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아마도 드문 일이 아니다.
- 습관화된 모든 것은 갈수록 견고해지는 거미줄을 우리 주위로 끌어 당긴다.
제8장 국가에 대한 성찰 - 국가
- 고급 문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사회계급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
- 날씨 제조자로 간주되는 정치가들
- 행복한 시대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만 하되 가지려고 하지는 않고 모든 개개인이 자신에게 좋은 시절이 찾아오면 분명히 불안과 곤궁을 갈구하기 때문에 결코 가능하지 않다. 인간의 운명은 행복한 순간에는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떠한 삶에도 그러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 사회주의는 거의 노쇠한 전제주의의 공상적 동생이며 그 뒤를 계승하려고 한다.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바는 따라서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반동이다.
제9장 홀로 있는 인간 - 개인
- 진리의 적 - 확신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 너무 깊게 가지 마라.
- 목표와 길 - 몇몇 사람만이 그 목표와 대해 집요하다.
- 친구 - 동정이 아니라 공감이 친구를 만든다.
- 자연은 우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품고 있지 않다.
- 오류가 동물로부터 인간을 만들었다. 진리는 인간을 다시금 동물로 만들 능력이 있을까?
-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요구는 최대의 오만이다.
- 하루의 길이 - 집어 넣은 것을 많이 갖고 있을 때, 하루는 백 개의 주머니를 차게 된다.
- 사람들은 명쾌하게 해명된 것 보다, 해명되지 않은 불투명한 것을 보다 중요하게 본다.
- 직업은 멍하게 만들어 주는데, 거기에 직업의 큰 축복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반적인 주저와 염려가 엄습할 때 아무 구애도 받지 않고 등 뒤에 숨어버릴 수 있는 방벽이기 때문이다.
- 청춘은 불쾌하다. 어떤 의미해서 볼 때 생산적이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또 비합리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차에 치일 위험이 가장 많은 것은 바로 차를 피했을 그때이다.
- 직업은 삶의 척추이다.
- 욕망은 우리에게 노동을 강요하며 그러한 노동의 소득으로써 욕망은 가라앉게 된다.
- 함께 기뻐하길 좋아하며 도처에서 친구를 사귀고 성장하거나 생성하는 모든 것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타인의 모든 명예나 성공을 함께 누리고 홀로 진실을 인식하는 특권을 요구하지 않고 겸허한 의혹에 차 있는 성격 - 이것이 인간의 보다 높은 문화를 향해 분투하는 앞선 인간이다.
- 신념은 인식의 어느 한 지점에서 절대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신앙이다.
- 서로 침묵함이 아름답도다.
- 인간적의 다층적 아포리즘의 바로 그 다흥성은 이 탈피의 역사로서 즉 삶과 진리에 관한 니체 자신의 통절한 체험의 역사이다.
- 그리스도가 정말로 세상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가졌던 것이라면, 그는 그 일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승리를, 나아가서는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유용할 자기 자신의 극복을 제시 하는 일이어야 한다.
- 훌륭한 책은 서두르지 않는다.
- 쇼펜하우어가 고찰한 바에 의하면 천재성이란 자신이 체험한 바를 연관성있고도 생생하게 기억해내는 데 있다.
- 신앙은 축복하며 저주한다.
- 소유가 소유하다 - 소유는 인간을 독립적이며 자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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