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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의 의미

by mubnoos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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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 때는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 아빠가 남기고 간 책임들을 내가 맡아야 한다는 것, 엄마가 의지하던 큰 축이 부셔져 버렸다는 것, 이제부터는 적어도 내 앞가림은 해야 한다는 것,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서 가족을 위해 무엇 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 아빠가 내가 낳은 아이를 절대 볼 수 없다는 것, 아빠와는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  - 아빠의 죽음이 쓸쓸하고, 무거운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한 가지 확실하게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삶은 소름끼치도록 허망하다 것이다. 삶은 의미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허구에 가까운 거짓말 그 자체라는 것이다. 난 그런 거짓말 같은 거짓말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난 아빠를 증오했다. 나에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아빠 탓으로 여겼고, 사춘기 이후 아빠와 같이 있는 것 자체를 피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빠와 진정으로 무언가를 함께 공유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빠와 나 사이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다. 심지어 아빠가 죽어가는 걸 알고 있었던 당시에도 나는 아빠에게 따뜻한 태도나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아빠에게 미안하다. 아빠도 분명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웠을 것이다. 아빠는 말 없이 버텼고, 갑자기 죽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 몰랐던 좌절과 공포는 계속되는 삶에서 쓰디쓰게 스며 나온다. 그런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한다고 무엇을 되돌리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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