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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 / 안도 다다오

by mubnoos 2021. 12. 23.

 

 

 

 

 

 

 

안도 다다오에게 여행이란?

이 책은 안도 다다오가 10대 후반에서 오늘까지 '여행'을 통해 건축을 배우고 고민하고 만들어온 '여행'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엮은 글이다.

 

ㆍ여행은 홀로 떠나는 것이리라. 일상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미지의 장소에 홀몸으로 다다랐을 때 인간은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고,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길을 던지게 된다. 고독이야말로 긴장과 불안, 삶의 지난함과 위대함을 가르쳐준다. 

 

ㆍ구체적인 이동만이 '여행'이 아니다. 그 궤적을 더듬으며 반추하여 기억을 보다 깊이, 뚜렷하게 만드는 사색의 '여행'도 존재하리라.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여행'이 얼마나 격렬히 마음을 흔들었는가, 얼마나 스스로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방시켰느냐다.

 

 

 

 

 

1후에, 아시아의 물, 인간 냄새

ㆍ여행은 인간을 만든다. 

 

여행은 고독이다. 그런 가운데서 예기치 않은 일과 수시로 만난다. 인간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ㆍ왜 건축가가 됐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허나 적어도 이 말만은 할 수 있다. 내게 건축이란 인간을 알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 그와 동시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지구에 거주하는 일원으로서 사회와 불화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건축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나는, 내 안의 사고를 사회에 제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ㆍ인간의 냄새를 지우면 인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와 직결된다. 

 

 

 

 

 


2파리 1, 건축의 빛을 구하여

ㆍ건축에서 빛이란 색과 온도, 질감, 깊이를 품고 안에 머무는 인간의 정신을 좌우한다. 

 

ㆍ본래 건축이란 경제성과 기술력과 합리성, 또는 건축주의 요구라는 속박 안에서 이성으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3바르셀로나 1, 풍토는 인간을 만든다

ㆍ쌍둥이 동생이 17세에 프로 복서로 데뷔했다. 

 

ㆍ가우디의 건축은 논리가 파탄이 나는 지점에서 분출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논리로 통일된 근대 건축은 합리적이고 단정하며, 그리고 아름답다. 허나 그런 건축은 너무나 미끈하여 어딘가 인간의 마음을 끄는 구석이 없다. 그에 비해 가우디의 건축은 일견 무질서하고 모든 요소가 모순 속에 있으면서도 그 모순은 하나의 통일된 전체에 이른다. 

 

ㆍ건축주인 구엘이라는 인물의 강렬한 에고이즘이 있었다. 구엘은 가우디의 후원자다. 건축은 건축가만의 것은 아니다. 

 

ㆍ건축은 공간으로부터 자연을 차단하고 테크놀로지에 의해 관리되는 공간을 조성했다. 그 안에서 건축 또한 소비사회의 상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건축이란 본디 인간이 생활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4밀라노, 보스턴, 형태의 극한

ㆍ'미란 실용성에 깃든다.' - 셰이커

 

 

 

 


5헤이그, 20세기라는 시대

ㆍ내가 건축이란 공간에서 구하고자 하는 바는 개념성이다. 그리고 개념은 추상화됨에 따라 공간 안에서 보다 선명해진다. 

 

ㆍ추상화를 통해 개념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표현은 20세기 산물이다. 

 

자연을 조형화하면 수평과 수직의 선으로 나뉜다.' - 몬드리안

 

 

 

 


6바르셀로나 2, 쉼 없이 질주하는 야성

ㆍ본래 건축이란 건축주와 사회의 미묘한 균형 위에 성립한다. 

 

 

 

 


7파리 2, 프로파간다의 도시

 

 

8뉴욕 1, 악마가 마천루로 이끌다

폴록의 작품 앞에 섰을 때 누구라 할 것 없이 그의 강렬한 그림에 빨려들며 사고 정지 상태에 빠졌으리라. 나 역시 강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종극에는 난 왜 사나? 하는 물음까지 갖게 만들었다. 그만큼 자기 생의 근간까지 뒤흔들 정도로 보는 이에게 의지를 요구했다. 폴록의 작품에는 그런 독이 있었다. 그 맹독은 아마도 작가 자신까지도 분명 덮쳤을 것이다. 자신은 물론 주위의 모든 것까지 파괴하며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욕망. 그러한 욕망은 작가에게 악마의 속삭임과도 비슷하다. 황홀할 만큼 매력적인 반면에 무서울 만큼 불안과 고독을 초래한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나 역시 쉴 새 없이 귓가에 속삭이는 마성의 공포를 실감하기에 폴록의 고뇌가 이해된다. 자기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이 악마를 말살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번뇌에 휩싸이지 않고 안락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허나 그랬을 때 작가는 작가로서의 수명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

 

9파리 3, 생생유전물은 순환한다

 

 


10뉴욕 2, 암흑의 절규를 들어라

 

 

 


11세비야, 그라나다, 길항의 땅

ㆍ아무래도 인간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에 동시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단순한 것에 매료되면서도 복잡한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에 끌리는 와중에 낡은 것에 사랑을 고백한다. 추상을 지향하는 동시에 구상을 강구한다. 

 

 

 

 


12아마다바드, 영원한 심층으로 내려가다

ㆍ건축은 영에서 출발하여 아무것도 없는 곳에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구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역사와 전통, 또는 시대성과 지역성이라는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며 펼쳐진다. 그런 면면들을 물리적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건축의 이면에서 펼쳐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심층부야말로 건축의 생명, 그 자체라 말할 수 있으리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시각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어도 건축은 건축으로 존재한다.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건축의 가능성이 태어난다. 

 

ㆍ영에서 출발하면서도 서서히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깎아가다 어느 순간 부상하는 군축이었다. 말하자면 포지티브 플러스 건축이 아니라 네거티브 마이너스 건축이다. 

 

ㆍ모든 창조적 자극은 창조자의 피가 되고 살이 돼서는 어느 순간 새로운 생명으로 돌연히 나타난다. 그러한 자극이 단순한 지식에 머문다면 거기에 생명이 깃들지 않는다. 생명을 낳으려면 창조적 자극을 주입하고 수정하고 잉태할 수 있는 육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품었을 때 그 태동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불안과 긴장 속에서 항상 자신과의 투쟁을 이어온 육체만의 특권이리라.

 

 

 

 


13로마, 여행하는 정신

ㆍ나에게 유일한 배출구는 여행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일을 하고 받은 돈 대부분은 여행에서 다 썼다. 설령 통장에 한 푼도 남지 않더라도 내 안에 뭔가 남으면 그만이다는 마음이었다. 

 

ㆍ건축과 인간의 동선을 계산한 배치의 중요성을 거기서 배웠던 것 같다. - 캄피돌리오 광장

 

여행의 성패는 가공의 대화가 얼마나 가능하냐에 달려 있다. 결코 말하지 않는 존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현실의 대화와 또다른 깊이가 있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라면 바랄수록 가공의 대화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14건축 지남, 건축이 올라갈 때

ㆍ회화나 조각 같은 다른 예술과 달리 건축은 온갖 제약에 구속된다. 별의별 저항과 맞서 싸워가며 건축은 올라간다. 이러한 투쟁 없이는 건축은 존재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건축이란 투쟁 속에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며, 완성된 건축은 그 과정의 결과에 불과하다. 즉 건축은 투쟁의 예술인 것이다. 

 

 

 

 


15건축 지남 2, 폐허로 향하는 건축

ㆍ건축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면 나는 생명력이 떠오른다. 

 

ㆍ결국은 완성될 수밖에 없는 건축은 올라갈 때 지녔던 거친 약동감과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일상의 수준 밑으로 내려가며 많든 적든 하나의 질서에 통합되는 운명에 빠지기 마련이다. 

 

ㆍ증명해주는 것은 시간 뿐이다. 

 

 

 


16교토, 도시의 소생술

 

 

 


17베를린, 벽, 포용

ㆍ'내 관심은 항상 광장이며 상황 그 자체다.' - 세라

 

ㆍ조각과 건축의 차이란 벽일지도 모른다. 

 

 

 

 


18아테네, 순수이성의 우주

ㆍ이성과 기하학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파르테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9LA, 프로세스의 건축

ㆍ포기할 때를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ㆍ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자에게 창조란 그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리라. 

 

ㆍ예술이란 치열한 사고 그 자체이자, 만드는 행위 안에 존재한다. 완성된 작품은 그저 행위의 결과에 불과하다.

 

ㆍ건축은 만들 때도, 만든 뒤에도 '살아 숨 쉬는 생물'이다. 

 

ㆍ인간이란 실로 불가사의하고 즐거운 존재구나.

 

 

 

 


20카파도키아, 표현에 이르는 악의

ㆍ표현은 때로 악의의 행위일 수 있다. 건축 또한 하나의 표현이라 한다면 거기에도 사람들의 상식적인 기대를 배신하는 악의가 스며든다. 그럴 때 건축은 보다 자극적으로 변하며 때로는 재밌는 결과물이 탄생한다. 대개는 건축이 선의의 집적이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선의의 건축이란 요구된 기능을 충족하고, 예산 내에 수습되고, 예정된 시간 내에 완성하고, 살기 좋고, 쓰기 좋은 건축을 말한다. 선의의 건축은 현실 사회와 원만히 타협을 지었기에 실로 평화로운 외양을 갖고 있다. 

 

 


21도쿄, 허와 실의 틈에서

도시에 이물을 주입하는 작업을 통해 갖가지 요소들과 얽히며 자극적인 충돌을 발생함에 따라 도시 재생의 가능성으로 폭발할 수 있다. 단 과거의 것을 바꿔 소생시킬 수 있는 이물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에 의해 주입된 이물뿐이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이 좋은 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건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몇 차례의 증축이 가해졌다가, 이번에 가장 새로 지어진 건축이 바로 유리 피라미드다.

 

 


22바젤, 정과 동의 대결

ㆍ건축은 건축가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건축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구비되어야만 한다. 그 조건 중 하나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건축주다. 예컨대 가우디의 구엘 공원도 구엘이라는 후원자의 열정이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고, 구겐하임미술관도 라이트의 꿈을 공유하는 감성을 갖춘 구겐하임 없이는 완성될 수 없었다. 건축주 또한 건축가의 공동 작업자다. 

 

나는 건축에 최소한의 재료와 형태를 이용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고자 한다. 일견 단순하게 보일지라도 실은 복잡한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나는 건축을 만들 때 예컨대 원과 정방형, 입방체와 같은 원초적이라 할 최소한의 기하학 형태를 이용한다. 애매함은 철저히 배제하여 모든 요소를 내버림으로써 성립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색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공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모노크롬의 세계를 중시한다. 인간과 자연의 색으로만 성립하는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게리의 건축은 복잡한 형태를 점점 증가하며 증식해간다. 애매함을 무기로 삼으며 형태가 형태를 불러일으키고, 색채가 색채를 취합해간다. 내 건축이 일본의 전통에 뿌리를 둔 ‘정(靜)’의 건축이라면 게리의 건축은 지극히 미국적인 ‘동(動)’의 건축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23지브롤터, 지구의 끝에서

ㆍ나는 역시 시간형 인간이다. 소리를 들어도 형태나 색깔로 치환하며 이미지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24빈, 곡선을 유혹하다

ㆍ클림트는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25베네치아, 강을 헤매다

ㆍ여행이란 목적지에 이르기 전, 그 시간 동안 존재하며 그 과정 속에서 당황하고 방황하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여행의 행로는 미로처럼 엉켜 복잡할수록 얻을 것이 많아지고 마련이다. 

 

 

 

 


26이스탄불, 근대 건축의 묘비

ㆍ이스탄불은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도시다. 

 

 

 

 


27러시아, 적색 진혼가

ㆍ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사회에 대한 자세는 건축에 대한 나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내게 건축이란 예술의 한 표현에 그치지 않고 사회 참가의 수단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신의 건축은 사회를 응시하는 수단이며, 스스로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문하는 거울과 같은 장치이기도 하다. 

 

 


28마르세유, 궁극의 나무와 돌

비틀즈가 그랬던 것처럼 그 무렵 세계의 변혁을 꿈꾼 자들에게 인도는 하나의 이상형이었다. 포교란 이름으로 강압적인 정복을 거듭해온 서양의 원리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에, 설령 가난할지라도 살생을 기꺼워하지 않고 모든 생물이 평화로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도라는 나라는 마치 새로운 사회의 상징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또한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을 외친 끝에 인도 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경제, 권력, 폭력이 아닌 방법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이 내게는 있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나는 다시 인도라는 땅에 발을 내디뎠다. 

 

 


29카슈미르, 아직 보지 못한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