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ㆍ 반항이야말로 최초의 가치원천으로서 주인에게 반항하는 노예는 인간의 권리를 요구하고 주인으로서의 주인을 부정하지만, 이 부정에는 원래 긍정해야 할 것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만일 반대자가 긍정과 부정의 긴장에 지쳐서 인간의 조건 자체를 전적으로 창조하려고 하면, 그것은 형이상학적 반항이 되고 여기에서 니힐리즘이 시작된다. 이것은 근대의 여러 사상과 함께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역사에 있어서는 전체성을 요구하는 혁명내에서 논리적 귀결을 발견한다. 카뮈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도 모든 공포정치와 마찬가지로 예언적 교의로서 살인을 정당화하게 되었는데 그 유래는 한계를 넘은 전적 부정, 곧 니힐리즘에 있었다. 창조적인 반항이란 한계를 자각하는 것, 중용의 옹호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자각이 카뮈가 말하는 '정오의 사상'인 것이다.
머리말
ㆍ중요한 것은 아직 사물의 근본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착하는 일이 아니라, 그보다는 세계가 지금과 같이 돌아가고 있는 한, 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아는 일이다.
ㆍ어떤 결론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되면하든지 양자택일하는 것 외에 다른 출구는 없다.
ㆍ만약 우리가 그 어떤 가치도 긍정할 수 없다면, 무엇이든 다 가능하게 되고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것은 없게 된다.
ㆍ삶이 부조리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의식이 살아 있어야 한다.
ㆍ자살에 조리성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살인에도 조리성을 부여할 수 없다.
ㆍ우리가 만약 자살에 그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살인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ㆍ사람이 반쯤만 허무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ㆍ어떤 의미에서 보면 고독하게 혼자서 자살하는 사람은 여전히 어떤 가치를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 타인의 생명을 좌우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살의 결심과 더불어 획득하게 된 무서운 힘과 자유를 결코 타인이 지배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모든 고독한 자살은, 그것이 원한으로 인한 것이 아닐 경우, 어딘가 고결하거나 도도한 데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 도도하다는 것은 그에게 무엇인가 믿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기와 함께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죽음 자체로부터 하나의 가치가 태어난다. 어쩌면 살아볼 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를 그 어떤 가치 말이다. 그러므로 절대적 부정은 자살로써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ㆍ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으뜸 가는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생명이다.
ㆍ부조리란 그 자체가 모순이다.
ㆍ살아 숨쉰다는 것. 그것은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삶이란 끊임없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이다. 그러나 선택이 배제된 삶이란 상상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ㆍ'뒤엎으려고만 할 뿐 스스로 창조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나의 적이다.' - 니체
ㆍ반항은 자기 점검을 마다하지 않고 그로써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제1장 반항하는 인간
ㆍ반항의 충동은, 참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침해에 대한 절대적 거부에 근거해 있음과 동시에, 어떤 당연한 권리에 대한 막역한 확신,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할 권리가 있다'는, 반항하는 인간의 느낌에 근거해 있다. 반항은, 내가 어떤 식으로 어딘가 옳다는 감정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ㆍ반항은 경계선을 시인함과 동시에, 그가 경계선의 이쪽 편에 있다고 짐작해 경계선의 이쪽 안에 간직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긍정한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암암리에 모종의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위험의 한가운데서 그것을 지킨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어원적으로, 획 돌아서며 돌변하는 자이다.
ㆍ인간의 내부에 지켜 간직해야 할 항구적인 것이 전혀 없다면, 무엇 때문에 반항을 한단 말인가?
ㆍ반항의 근저에는 넘치는 적극성과 에너지의 원리가 깔려 있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목표하는 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남들로 하여금 인정하도록 하는 데 있는데 그 어떤 것이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에게는 어떤 다른 탐낼 만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이미 인정되어 온 것이다.
ㆍ반항은 우선 남을 정복하려 들기보다는 자기를 주장하려고 애쓴다.
ㆍ반항은 심지어 자신의 완전무결함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고통 그 자체를 위한 고통까지도 수락한다.
ㆍ반항은 영구히 지켜야 할 인간 내부의 그 무엇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적극적인 것이다.
ㆍ모든 물음과 모든 말은 반항이다.
ㆍ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제2장 형이상학적 반항
ㆍ자유란 범죄다.
ㆍ인간은 분열과 우연으로 되돌아가버린다. 그러므로 새로운 법률에 정확히 들어 맞는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창조해내어야 한다. 신의 창조에서는 충족되지 못한 통일에의 욕구가 이 소우주에서 기필코 충족된다.
ㆍ가장 큰 파괴는 가장 큰 긍정과 일치한다.
ㆍ오직 외침만이 살아 있게 만든다. 열광만이 진리를 대신한다.
ㆍ타자들은 거울이다. 사실 거울은 쉽사리 흐려지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ㆍ무엇이나 다 허용된다는 것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의 역사가 시작된다.
ㆍ허무주의란 절망과 부정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절망하고 부정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ㆍ인간이 신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죽이는 것이다.
ㆍ사람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그렇다.
ㆍ니체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기에 정신의 자유가 안락함이 아니라 인간이 갈구하는 위대함, 힘든 투쟁을 통해서 점차 획득하게 되는 위대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ㆍ어떤 행위를 금지하자면 사실 어떤 가치,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한다.
ㆍ'신에 대한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대함을 부정하든지 아니면 위대함을 창조하든지 해야 한다.' - 니체
ㆍ니체가 상상한 바의 신 없는 인간, 즉 고독한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다.
ㆍ니체에게 자연이란 역사를 정복하기 위하여 인간이 복종하는 대상이다.
ㆍ랭보의 위대함은 유례가 없을 만큼 가장 절묘한 방식으로 반항에 적절한 표현을 부여하는 바로 그 순간에 폭발한다.
ㆍ사회는 개인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제도이기도 하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타탕한 이유를 요구한다. 그는 죽음에서 귀결되는 결과를 거부하는 것이다.
ㆍ'그리고 우리는 혼자다.'
제3장 역사적 반항
ㆍ자유는 모든 혁명의 원리가 된다. 자유 없는 정의란 무릇 반란자들에게 있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ㆍ대부분의 혁명은 살인을 통해 형태와 독창성을 취한다. 모든 혁명, 혹은 거의 모든 혁명은 살인이었다.
ㆍ'법률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허황하며 죽음이다.' -생쥐스트
ㆍ불가능한 사랑이란 사랑의 반대다.
ㆍ헤겔에 따르면 동물은 외부 세계에 대한 즉각적인 의식과 자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아에 대한 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자의식이야말로 인간을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것이다. 인간은 인식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태어난다. 인간은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자의식이다.
ㆍ자의식은 필연적으로 욕망이다. 그러나 자의식은 존재하기 위하여 만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의식은 자기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
ㆍ분명히 주인의 자유는 우선 노예에 대하여 전적인 것이다. 왜나하면 노예가 주인을 전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ㆍ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적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노예의 장구한 노력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ㆍ신의 신비란 인간 자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신비에 지나지 않는다.
ㆍ진정한 철학은 철학의 부정이다. 아무 종교도 없다는 것이 나의 종교요, 아무 철학이 없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ㆍ현실을 이해한 사람은 현실에 반항하지 않고 현실을 즐기게 마련이다.
ㆍ반항은 이제 그 진정한 뿌리로부터 단절되어 역사의 노예가 됨으로써 인간을 저버린 채 이제는 세계 전체를 노예화할 계획에 열중한다.
ㆍ파시즘은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ㆍ승자는 언제나 재판관이 되고 패자는 언제나 피고가 되는 법이다.
ㆍ인류 발전에 있어서의 공업 생산에 대해 마르크스가 품고 있던 독자적 생각이 실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게서 빌려 온 것이라는 사실, 또 그의 노동가치설의 핵심은 부르주아 산업 혁명의 경제학자인 리카도에게서 얻어 온 것이라는 사실을 거기에 보태어 지적한다면 우리가 그의 예언을 부르주아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수긍될 수 있을 것이다.
ㆍ마르크스의 독창성은, 역사란 변증법인 동시에 경제라고 주장한 데 있다. 보다 더 자신만만한 헤겔은 역사란 물질인 동시에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ㆍ계급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계급의 소멸과 더불어 국가는 필연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ㆍ허무주의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려고 애쓰고 또 그런 노력만으로도 세계를 저버리기에 충분하다.
ㆍ반항이란 그 원초에 있어서 모든 존재의 전적인 부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항은 스스로가 찬양하는 존재의 한 부분의 이름으로 존재의 다른 한 부분을 거부하는 행동이다.
ㆍ'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ㆍ형이상학의 반항 '그리고 우리는 외롭다.'
제4장 반항과 예술
ㆍ어떠한 예술가도 현실을 용납하지는 못한다.
ㆍ창조란 통일의 욕구이며 세계에 대한 거부다.
ㆍ예술가는 자기 생각에 맞추어 세계를 창조한다.
ㆍ세계는 결코 침묵하는 법이 없다. 세계의 침묵조차 우리로서는 인지할 수 없는 진동으로 똑같은 음정들을 영원히 되풀이하고만 있다.
ㆍ어쨌든 소설을 쓰거나 읽는다는 것은 엉뚱한 행위다. 실제 사실들을 새롭게 짜 맞추어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일이나 필연적인 일은 결코 아니다. 소설이란 창조자와 독자의 즐거움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통속적 설명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대체 무슨 필연성이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에 그토로고 즐거움과 흥미를 가지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ㆍ모순은 이런 것이다. 즉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면서도 그 세계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ㆍ진정한 형식주의는 침묵이다.
제5장 정오와 사상
ㆍ주인과 노예 사이에 공통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ㆍ모든 애매함과 모든 오해는 죽음을 유발한다. 분명한 언어와 낱말만이 그 죽음에서 구해줄 수 있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그 누구도 욕되게 하지 않는다. 그가 요구하는 자유,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 요구되는 자유다. 그가 거부하는 자유,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 거부되어야 하는 자유다. 그는 주인에게 대항하는 노예일 뿐만 아니라, 주인과 노예의 세계에 대항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ㆍ반항이 파괴로 귀결될 때 그것이 논리에 어긋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 조건의 통일을 요구하는 반항은 삶의 힘이지 죽음의 힘이 아니다. 반항의 심오한 논리는 파괴의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논리이다. 반항 운동은, 그것이 변함 없이 진정한 것이 되려면, 그것을 지탱해주고 있는 모순의 어떤 항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자신의 반항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세계와 역사로부터 등을 돌릴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악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영원한 삶을 선택할 수 없다.
ㆍ지성이란 우리가 여전히 현실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우리의 자질이다.
ㆍ개략적 사고만이 유일하게 현실을 생성하는 힘을 갖는다.
ㆍ존재란 실존일 뿐이라고 말할수도 없다. 항상 생성 변화 중에 있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시작이 필요하다. 존재는 오직 생성 변화 속에서만 체험될 수 있다. 그리고 생선 변화란 존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는 순수한 고정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는 단지 운동만인 것도 아니다. 세계는 운동이자 고정성이다.
ㆍ'정오의 사상'
ㆍ반항은 생의 운동이다.
ㆍ반항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감당할 수는 있다. 이 순간부터 정오는 바로 그 역사의 운동 위에 환히 빛을 발한다.
ㆍ사상의 정오에서, 반항하는 인간은 이처럼 인간 공동의 투쟁과 운명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신성을 거부한다. 우리는 일편단심의 땅 이타카를, 대담하고 소박한 사상, 명철한 행동, 그리고 지자의 너그러움을 택할 것이다. 눈부신 빛 속에서 세계는 여전히 우리의 최초이자 최후의 사랑이다.
해설
ㆍ'래디컬하다는 것은 사물을 그 근본에서 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근본은 인간 자신이다.' - 마르크스
ㆍ'중요한 것은 아직 사물의 근본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착하는 일이 아니라, 그보다는 세계가 지금과 같이 돌아가고 있는 한, 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아는 일이다.' - 카뮈
ㆍ'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이 신비다.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한다. 반항은 그 어려움의 범주에 항의하는 '의지와 행동'이다.
ㆍ표현은 침묵과 몰이해의 파괴이다.
ㆍ'반항하는 인간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획득하여 신과 맞서서 그것을 지탱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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