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길치다. 하지만 아무리 길치여도, 출퇴근 길에 길을 잃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길치이상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매일 출퇴근하는 길이다. 심지어 지난 10년동안 같은 시간에 반복해 온 루틴, 삶의 한부분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은 아닌 패턴이었다. 나의 삶에 6.5%나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길을 잘 못 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길을 잘 못 들고나서도, 잘 못됐다는 것을 한동안 몰랐다는 점이다. 난 길치다. 별 수 없다. 티맵을 켰다. 잘못된 것을 알고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워서였을까, 잘 못 온 길에서 나는 다시 또 잘 못 든 길로 들었고, 정신을 차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일이지, '잘못한' 일은 아닌거 같았다. '길을 잘 못들었다' 이 말은 어딘가 불가항력적인 느낌이다. '길치'라는 것은 수동적이고 수비적인 핑계를 위한 분류방법 같았다. 이 정성적인 분류법은 다분히 한국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곰곰히 따져보니, 약 10년의 기간동안 이번이 세 번째 정도되는 것 같다. 대략 계산해보면, 이런 일이 생기는 확률은 1/1000 정도이다. 이렇게 하니까 그 '불가항력적인 느낌'이 '사실'이 되는 거 같다.
그렇다면 999/1000의 기준은 무엇인가? 최단거리인가? 효율성 혹은 최적화의 개념인가? 난 결과적으로 평소보다 5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난 다시 10년 간 반복해 온 루틴 혹은 패턴, 제자리로 복귀했다.
'길을 잘 못 들었다' 라는 것은 희귀한 상황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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