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수영 <구봉도 바다수영>
4시10분
기상, 3시간 정도 잔 거 같다. 중요한 날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수능시험날 아침의 긴장감이다. 그동안의 노력을 시험하고 평가하는 날이다. 컨디션을 확인한다. 양치를 하고 물로 대충 얼굴을 비빈다. 어차피 2시간 뒤에 바다에 들어간다. 집에서 구봉도까지 거리는 56km, 차로 1시간정도 걸린다.
5시30분
구봉도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수를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되돌아 갈 수도 없다. 할 수 있다, 하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이젠 해야 한다고 고쳐 생각한다. 그동안 수영장에서 할 연습은 충분히 했다. 이젠 바다수영, 실전이다. 준비물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스윔슈트, 부이, 수경, 수모, 슬리퍼, 그리고 내가 끝까지 할 수 있다는 믿음.
6시
슈트를 입고 나머지 준비물을 챙기고 같은 철인팀 동료들을 찾는다. 미소로 인사한다. 긴장된 탓일까, 수모를 쓰고 있어서 일까, 얼굴이 어색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동료들은 바다수영이 처음인 나를 이것저것 확인한다. 슈트에 피부가 쓸리지 않도록 목에 바세린을 발라준다. 슈트의 뒷부분 지퍼를 올리고 내 등 위에 손바닥을 댄다. "화이팅!" 나도 어색한 얼굴근육을 움직이며 답한다. "화이팅!" 동료들이 없었다면 여기에 올 생각조차도 안 했고, 올 수도 없었다. 작은 용기가 생긴다.
6시 15분
어느새 바다 위에 오렌지색 해가 떠있다. 팀원들과 인원, 컨디션, 준비물 그리고 코스를 확인한다. 둥글게 모여 몸을 푼다. 모두 검은 슈트를 입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확인하기 어렵다.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수모 색상과 부이 색상을 확인한다. 단체사진을 찍고 바다로 향한다. 바닥의 조게껍게기 때문에 발이 따갑다. 모든 게 어색하다.
6시30분
입수한다. 바다물이 차갑다. 18도. 사람들은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온도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가민 시계의 운동시작 버튼을 누른다. 몇몇의 고수들은 벌써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바다를 바라본다. 목적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가 보일 때까지 수영해야 할 뿐이다. 보이는 것은 뿌연 바다가 전부다. 팔을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물 속의 시야는 내 손끝이 보일랑말랑 한 정도다. 차갑고 짠물이 입 안으로 들어온다. 물을 뱉으며 호흡을 한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지금의 손동작, 한번의 호흡에 집중한다. 침착하게 천천히 하나씩. 일단 바다 중간까지 가면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다.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나만의 박자를 찾아 반복한다. 수영장과 바다수영의 가장 큰 차이는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방주시를 하게 되면 물의 저항을 받아 몸의 박자가 깨지기 쉽다.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방향을 잡는다. 리듬을 찾는다. 동료들이 내 리듬에 맞춰 동행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호흡하려고 고개를 들 때마다 오른쪽의 동료를 확인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7시20분
섬을 돌아 바다 중간까지 가면 작은 등대가 있다. 출발지점부터 등대까지의 거리는 2km, 등대가 보인다. 구봉도를 유튜브로 찾아보며 저 등대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등대를 발견한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들이 사라졌다. 그것은 분명 수영실력에 관한 아니였다. 멘탈에 대한 것이었다. 즉,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의 문제였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하는 의구심, 지금까지 한 노력들이 헛수고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실패하면 어떻하지라는 공포. 나에게 구봉도 등대는 오픈워터에 대한 두려움이 자유로움으로 바뀌는 전환점이었다. 등대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도착지점까지 빨리 가고 싶다. 다시 바다로 들어가 팔을 젓는다. 좀 더 빠르게 몸을 움직여본다.
8시 10분
완주했다. 육지에 올라오니 몸이 휘청휘청 균형잡기가 어렵다. 맨발로 육지의 조개와 돌을 밟아 따갑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으로 바닥을 지탱하고 몸을 세운다. 입안이 소금물 때문에 감각이 얼얼하다. 살아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근사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수영, 3.9km, 1시간 반, 구봉도 오픈워터를 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