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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김중혁

by mubnoos 2025. 3. 6.

 

 
 




랜덤 댄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원하던 목적지에 있을까? 그때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내가 예전에 원했던 곳에 있다면 더 좋았을까? 삶에 목적지라는 게 있을까? 내가 했었던 선택들은 이성적이고 계획적이였을까? 대부분의 나의 선택들은 '그냥' 한 것들 아닐까?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 다음, 이성이나 논리에 따라 애써 해석하며 반복해온 것은 아닐까? 나만 그런가?

세상에 확실하게 정해진 목적 같은 것이 존재할까? 물리학자들은 결국 '우주에는 정해진 의미 같은 것은 없다'고 증명한 것 아닐까. 예컨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입자이며 동시에 파동이라는 '말장난' 같은 양자역학, 세상은 원래부터 흐릿하게 존재하며 완벽한 측정을 할 수 없다는 '김새는' 불확정성 원리_ 물리학자들의 김새는 말장난들을 기반으로 한 실제 세상은 나에게는 마치 '액체괴물' 같다. 확실한 형태도 의미도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정확한 목적 같은 것을 확실하게 소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그렇게 믿을 순 있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세상은 정해진 목적이 아니라, 우연한 실수들로 만들어졌다. 순간순간의 실수들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지금의 모습으로 세상은 진화해왔다. 거대한 우주가 정해진 목적이 아닌 우연을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데, 그 세상 안에 소속된 작은 내가 나의 목적대로 삶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좌절하거나, 억울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의 무작위성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겸손의 본질 아닐까? 목적 없이 살고자 함이 아니다. 목적대로 되지 않더라도 살아가야 함이다. 그렇다면, 진부한 정답보다는, 오히려 흥미로운 오답이 우리를 목적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수 있지 않을까?

글을 시작할 때는 '뭐라도 쓰겠지'라는 마음으로 무슨 말을 할지 모른채 시작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하나의 글이 되었다. 먼저 무엇을 쓸지 생각하고 글을 쓸 때도 있지만, 무엇을 쓸지 모르고 '그냥' 글을 쓰기도 한다. 글이 어디론가로 데려가 주리라는 믿음일까? 생각이 글이 되는 순간 무엇을 쓰고 싶은지 확인할 수 있어서 일까? 쓰기는 목적을 내려 놓고 손을 움직여서 목적을 발견해가는 행위 같다. 우리는 쓰지 않고 생각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쓰기는 잡히는 것과 잡히지 않는 것을 엮어 내는 신비한 도구다. 

그냥 살아가는 것, 역시 무작위적인 세상과 모호한 나를 엮어 내는 신비한 도구일 수 있지 않을까?  '뭐라도 되겠지'라는 말은 미래의 나보다, 지금 내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삶에 목적지라는 게 있긴 할까? 삶은 마라톤일까? 인생은 정해진 코스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아니라,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순간순간의 댄스 아닐까? 춤출 수 있는 곳이 모든 곳이 목적지가 될 수 있는 그런 느낌.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따라 동작들을 이어가는 것 아닐까? 이렇게도 춰보고, 저렇게도 춰보고, 그러다가 하기 싫거나 힘들면, 가만히 쉬어도 보고...그러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뭐든지 될 수 있겠지... 불확실성은 오히려 삶의 무한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겠지? 



 
 



 
 







• 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김중혁씨는 누구세요?


• 모두 자신의 페이지를 디자인하고 있다.

• 시간은 늘 우리를 쪽팔리게 한다. 우리는 자랐지만, 기록은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기록은 정지하기 때문이다. 자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쪽팔림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쪽팔림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 웅크림 사람은, 뛰려는 사람이다. 웅크린 사람 앞에 장사 없다.

•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에잇. 그럴거면 차라리 보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현재에 충실했던 것 같다.

• 인생이 예순부터라면, 청춘은 마흔부터다. 마흔 살까지는 인생 간 좀 보는거고. 좀 놀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지.

•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성실하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행복해지면 된다. 주름만 만들듯 천천히 내 속도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 “그래. 이해한다. 네 인생을 허비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말이다. 너는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은 거야.”

 
• 낭비하는 심정으로 소설을 썼다. 낭비해봤자 본전이었다. 낭비하는데도 시간은 낭비되지 않았다.


•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낭비해도 괜찮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인생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종이를 낭비해도 괜찮다면 코앞에 목적지가 보여도 돌아갈 마음이 있다면, 소설을 써도 상관없을 것이다. 낭비를 낭비로 느낀다면 곤란하다. -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소설 쓰기를 원하고 싶지 않다. 소설은 투입하는 시간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작업이 아니다. 모든 게 더디고, 아주 조금씩 전진하고, 가끔은 뒤로 가기도 한다. 문장들을 이어 붙여 문단을 만들고, 문단을 쌓아서 흐름을 만들고, 흐름을 엮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혼자 모든 걸 조사하고, 혼자 책임지고, 혼자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낭비해도 좋은 사람에게는, 다른 걸 버리고 시간을 얻은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신나는 작업은 없을 것이다. 한 문장 다음에 올 수 있는 문장은 무한대다. 무한대의 가능성 중에서 오직 나만이 선택할 수 있다. 오직 한 사람만이 모든 걸 조절할 수 있다. 그 쾌감은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해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한 번 빠지면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내가 알기론 불가능하다.
 
•  나는 소설 덕분에 바뀌었다.달라졌고 조금 나은 사람이 됐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열심히 듣게 됐다.
 
•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취한 것은 아껴 써야 한다.
 

•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학 시절 캠퍼스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간, 정신줄을 놓은 채 목숨 걸고 놀던 시간, 그 완벽한 진공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 흙은 소유할 수 없다. 흙은 나눠 가지는 것이고 함께 서 있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알게 된 후부터 소유의 개념이 생겨났다. 나와 너의 구분이 생겨났다. 절대 빌려줄 수 없는 나만의 물건이 생겼으며 나도 꼭 갖고 싶은 너의 물건이 생겼다.

•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다른 이름으로 정의하자면, 아마도 상상력일 것이다. 세상에는 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존재하며, 답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의 질문에 무수히 많은 답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해 세상을 아주 자세히 관찰하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답이 생겨나게 된다.

• 스티커란 하나의 상징이자 압축된 시간이다. 스티커는 취향의 압축물이기도 하다. 모든 위대한 사건은 스티커처럼 작은 공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자주 두려웠다.
 
•  1중혁, 김중혁이 하루에 쓰는 원고의 양으로 대략 원고지 0.5매다. 보통 이렇게 쓰인다.

 






한가해서, TV를 켰네


•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 다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  나는 가끔 예전의 심심한 라디오가 그립다.


• 소리는 아름답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답지 않은 소리가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소리는 아름답다. 문제는 소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언제 그 소리를 내는가, 언제 그 소리를 듣는가, 어떤 마음으로 듣는가, 어떤 크기로 듣는가, 그게 문제였다. 결국 인간이 문제였다.

 

• 승부란 평행봉의 세계가 아니라 시소의 세계다. 아주 작은 실수가 패배의 원인이 되고, 아주 작은 행운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게, 인간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닌가.




책과 영화를 둘러싼 모험


• 어째서 목표 따위를 물었을까. 예술에 목표 같은 건 없다. 마음이나 에술에는 목표가 없다. 마음을 기록하는 에술은, 그러므로 산만한 자들의 몫이다.
 
• 세상은 두 가지나 세 가지로 구성돼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대략 5억만 개 이상의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는 아주 작은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패는 아주 작은 실패일 뿐이다. 스무살 때 그걸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실패를 해보았을 것이다. 실패가 행복이란 걸 알았을 것이다.

• 세상은 공포였고, 죽음이란 블랙홀이며, 삶이란 지루함이었고, 내일이란 불필요한 희망이었다.

•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세상을 비웃어주어야만 내가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  숫자로 생각하면 가끔은 모든 게 허망하다.


• 죽음은 삶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것입니다.

• 정말이지, 사는 게 무섭다. 시간이 무섭고 사람이 무섭다.

• 가장 섬뜩한 공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 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깜깜한 방 안에서 성냥을 켜는 순간, 아주 적은 빛만 보일 때 공표가 생겨나는 것이다.

 

•  소설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주제로 나아가야 한다_스티븐 킹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거창한 이념보다 사소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더 믿음직스럽다. 


• 스스로의 기쁨을 제대로 찾아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해도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손을 잡으면 우리가 된다

 
•   우리가 어린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은 그 시절에 발견했던 온전한 기쁨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 인간은 자신보다 힘이 없는 자에게 절대 관여할 수 없는 걸까.

• 예술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예술을 배운다는 것은 더 많은 질문을 배우는 것이다. 에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세상에 더 많은 질문이 생기도록 돕는 일이다.

 
•  왜 자꾸만 물음표를 우그러뜨려서 마침표로 만들려는 것일까

•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 파괴된 인간관계의 불합리를 농담으로 덮어버리고 나면 결국 우리 손해다.

• 말이 칼이 되고 덫이 된다. 말이 길면 꼬리가 잡히고, 허술하면 조롱당한다. 쉽게 말했다가는 크게 당하고, 생각 없이 말했다가 걱정만 떠안게 된다. 말 한번 꺼내기 쉽지 않은 시대다. 우리 시대의 잘 말하는 법이란 남에게 책잡히지 않는 기술뿐이다.

• 어떤 글이든, 써본 사람은 안다. 지우고 붙이고 고치고 채우면서 한 줄의 글을 완성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려야 하는지, 써본 사람은 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한데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를 폭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무섭다.

• 사적인 공간에서의 의견을 광장으로 끌어오는 것은 반칙이다. 광장으로 끌로 와서 그걸 공론화하고 우리에게 어떤 여론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폭력이다.

• 나와 네가 손을 잡는 이유는 한 줄로 서서 더 먼 곳까지 뻗어나가기 위해서다. 원을 만들기가 아니다. 나와 네가 손을 잡아 동그란 원을 만들어버리면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울이 되고 만다. 그곳에 갇히는 순간 우리는 무서워진다.




여행의 무게 = 도착 - 출발 / 음식 * 사람


• 당근을 꼭 먹이고 말겠다는 어머니들의 핵심 교육 목표에는 책임감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선택했다면 끝까지 책임져라. 시작했으면 책임져야지. 시작했으면 이뤄내야지. 끈기를 가지고 배워라.

• 결국 삶이란 선택하고 실패하고, 또 다른 걸 선택하고 다시 실패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빨리 인정하고 원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유연성이다. 실패가 별게 아니란 걸 깨닫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으려면 실패에 익숙해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다 더 큰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  곰곰히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니던 시절,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다. 미술시간에 무엇인가 만들었고, 매일 노래를 불렀으며, 수업 시간에 뒷자리에 앉아 낙서를 했고, 교과서 한 귀퉁이에다 스톱 모션 에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뉴욕의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많은 양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간섭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다음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하는 의지를 되새긴 후 돌아오고 싶은 것은 아닐까.

• 사연이야 어떻든 모두들 외로워하며 버티며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서울은, 도시든, 야생보다 더욱 무서운 곳일지도 모른다. 자,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남읍시다.




인생의 비밀은 쓸데없는 것과 농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