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서양의 지혜 / 버트란트 러셀

by mubnoos 2021. 1. 27.
728x90

 

 

1장 소크라테스 이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하나의 카타르시스, 즉 정서의 세척이라고 한 말은 옳다. 결국 그리스인의 성격에 두 가지 면, 즉 질서 바르고 합리적인 면과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세계를 변혁시킬 수가 있었다. 니체는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어느 것이나 그 가운데 한 가지만으로는, 그리스 문화가 뛰어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25

 

서양의 문명은 그리스에서 나왔지만, 2,500년 전 밀레토스에서 시작된 철학적, 과학적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서양 문명은 다른 위대한 몇몇 문명들과는 다르다. 그리스 철학의 바탕에 있는 근본 사상은 로고스이다. 이것은 특히규칙을 뜻한다. 이와 같이 철학적 추론과 과학적 탐구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 결부에서 나오는 윤리의 가르침은 지식을 선으로 보지만, 이때 지식은 사심이 없는 탐구의 결과이다. 26

 

밀레토스의 탈레스는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철학과 과학이 시작되었다. 그리스의 전통은 탈레스를 7인의 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긴다. 헤로도토스의 주장을 미루어 보건대, 탈레스가 일식을 예언한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자들은 이 일식이 기원전 585년 무렵 일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29

 

다툼이야말로 세계를 움직이는 추진 원리이다. “다툼이 신과 인간 사이에서 사라지면 좋겠다는 호머의 말은 잘못이다. 그는 자기의 기도가 우주의 멸망을 기원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의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만물은 죽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라는 말은 이와 같은 논리적인 뜻에서 해석해야지 군사적인 격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43

 

“사람의 성격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날카로운 통찰은 2천 년 후에 프로이트에 의해 증명되었다. 52

 

엠페도클레스는 그때까지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던 세 가지 물질을 모두 채택하고, 거기에 제4의 물질을 첨가했다. 그는 이 물질들을 사물의뿌리라고 불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중에 이들을 원소라고 했다. 이것은 물, , 공기, 흙으로 구성된 유명한 4원소 이론으로 2천 년 동안 화학을 지배했다. 53

 

 

 

2장 아테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알고만 있으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을 저지르는 원인은 단 한 가지 무지에 있다. 그러므로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선은 지식이다. 선과 지식의 연관성은 줄곧 그리스 사상의 특징이었다. 기독교 윤리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기독교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인데, 이것은 무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94

 

 

소크라테스는 신만이 현명하며, 사람의 지혜는 쓸모 없는 것이며, 자기처럼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지혜자인 체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이 때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델포이 신탁에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려 애썼다. 97

 

 

철학자의 문자 그대로 뜻은지혜를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나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두 철학자는 아니다. 철학자란 진리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미술수집가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철학자라 할 수 없다. 철학자는 미 자체를 사랑한다. 107

 

우리가 철학을 모른다면, 우리는 동굴에 갇힌 죄수와 같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림자, 즉 사물의 가상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자라면, 이성과 진리라는 햇빛에 비치는 바깥쪽의 물체를 보게 된다. 이것이 실재이다. 우리에게 진리와 아는 힘을 주는 이 빛은의 이데아를 의미한다. 109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시민을 관리자, 병사, 서민의 세 계급으로 나눈다.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소수의 엘리트 국가가 처음으로 설립되면, 입법자는 관리자를 임명하고 그 후에는 관리자의 혈통이 뒤를 잇는다. 그러나 하층 계급 출신이라도 뛰어난 자라면 지배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고, 관리자 자손이라도 무가치하면 병사나 하층 계급으로 내려갈 수 있다. 관리자의 임무는 입법자의 의자가 실시되는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114

 

관리자의 사회경제적 생활은 엄중한 공산주의여야 한다. 그들은 작은 집을 가지며 자기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겨우 소유할 뿐이다. 그들은 집단으로 식사를 하고, 검소한 음식에 만족한다.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평등하고, 모든 여성은 모든 남자가 공유하는 아내이다. 115

 

정부는 세상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특히 정부는 이 멋진 새로운 세계를 신이 주신 것이라고 존엄한 거짓말을 주입시킨다. 두 세대가 지나면 적어도 민중들은 이것을 군소리 없이 믿게 될 것이다. 115

 

플라톤의 마지막 저서법률은 결국 哲人王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법의 통제 아래서 한 사람의 지배체제와 다수의 지배체제를 결합하는 일이라고 제시한다. 118

 

‘운동’과정지는 확실히 둘 다 존재하지만, 이들은 대립되기 때문에 결합할 수 없다. 단 결합의 가능성은 세 가지 있다. 만물은 완전히 분리된 채 존재한다. 이 경우 운동과 정지는존재의 일부분일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만물은 융합할 수가 있다. 이 경우 운동과 정지가 하나가 될 수 있을 텐데, 이것은 분명히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물 중에는 결합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결합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하는 일이 남는다.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존재비존재는 그것만으로는 무의미한 표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것은 판단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운동’, ‘정지’, ‘존재와 같은형상또는 종류는 이미테아이테토스에서 살펴본 전반적 학술어이다. 그것들은 분명히 소크라테스의 형상과는 전혀 다르다. 이 플라톤적 형상론은 나중에 범주론으로 발전하는 사상의 출발점이다. 138

 

플라톤의 기하학적 또는 수학적 원자론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감가의 세계를 형상, 기본적 물질, 실체 물체, 이 세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의 기본적 물질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실재는 형상과 형상이 흔적을 남기고 있는 공간과, 양자의 혼합의 결과이다. 140

 

사면체는 불의 기본적 분자, 정육면체는 땅의 기본적 분자. 정팔면체는 공기의 기본적 분자. 정이십면체는 물의 기본적 분자이다. 이들 분자를 해체해서 그 구성요소를 삼각형으로 만들고 다시 배열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본요소 간의 변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40

 

기원전 340년부터 필리포스 왕이 죽는 해인 335년까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거듭 고향에서 살았고, 이때부터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가 죽을 때까지 아테네에서 일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의 학교 리케이온을 창립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리케이온은 근처에 있는 아폴로 리케이오스 신전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 이름의 의미는이리를 죽인 아폴로였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학급을 맡아 강의했고, 거실이나 정원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습관에서 리케이온의 가르침은 소요학파 또는 돌아다니는 일파의 철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의 담화(discourse)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뛰어다니는 것을 뜻한다는 것에 유의한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145

 

형이상학(metaphysics)이란 문자 그대로는물리학의 뒤라는 뜻일 뿐이다. 이런 제명을 얻은 것은 초기 편찬자가 저서들을 배열할 때 이것을 물리학 뒤에 놓았기 때문이었다. 148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는 형상이 결국 질료보다 더 중요하다. 창조적인 것은 형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질료도 필요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소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형상은 문자 그대로 실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설명에서 형상이 실재 세계 과정의 기반이 되는 영원불멸의 존재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형상은 결국 소크라테스의 이데아 또는 형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149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의 분명한 한 가지 특징은 증명의 관념이다. 동방의 천문학자는 현상을 기록하는 일에 만족한 반면, 그리스의 사상가는 현상을 만족하게 설명하려고 했다. 하나의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에는 논증의 구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본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던 일이었다. 15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논증의 기본형은 삼단논법이라 한다. 삼단논법이란 하나의 명사를 공유하는 주어-술어 관계로 전제하는 논증이다. 이 중간의 공통되는 명사는 결론에서 소실된다. 예를 들면모든 인간은 이성적이다. 유아도 인간이다. 따라서 유아도 이성적이다이다. 이 경우에 결론은 전제에서 나오므로 이 논증은 옳다. 전제가 옳은가 그른가는 본디 모두 다른 문제이다. 실제로 잘못된 전제에서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도 가능하다. 153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과학은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술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는 그것을 공리라고 불렀다. 공리는 설명되자마자 명확하게 이해되기만 하면, 반드시 경험을 거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과학적 탐구의 과정보다도 오히려 일련의 과학적 사실의 진술과 관련이 있다. 155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율은 질료와 형상의 이론과 결부되어 있다. 인과율관계에는 질료적인 면과 형상적인 면이 있다. 형상에는 그 자체가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한정된 의미에서의 형상적인 면, 말하자면 배치가 있다. 둘째, 방아쇠를 당기면 총이 발사되는 것처럼 변화를 현실에 나타나게 하는 동인이 있다. 셋째, 변화가 이루려 하는 목표 또는 목적이 있다. 이들 네 개의 면은 각기 質量因, 形相因, 動力因, 目的因이라고 불린다. 160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치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영혼에 대한 그의 이론에 대해서 몇 마디 할 필요가 있다. 그는 플라톤에게서 삼분설을 빌려온다. 그는 식물적 영혼, 감각적 영혼, 이성적 영혼에 대해 말한다. 그 중 식물적 영혼은 모든 생물에 속하며, 모든 생물에는 신진대사가 있다. 감성은 동물과 인간에 속해 있고 식물에는 속해 있지 않은 반면, 이성은 특별히 인간에게 속한다. 이성적 수준에서 비로소 윤리학이 나타난다. 식물은 단순히 식물다운 생활을 할 뿐이며, 동물은 단순히 동물답게 살아갈 뿐 이다. 육체에 단일성을 주는 영혼은 육체라는 질료의 형상이다. 영혼은 육체적인 죽음이 올 때 존재하지 않는다. 단 이성 자체는 불멸한다. 169

 

유클리드의기하학 원리는 각 시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도달하려고 했던 모범적 사례였다. 스피노자가기하학 식으로그의 윤리학을 말했을 때 표본이 된 것도 유클리드였고, 뉴턴의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도 유클리드 이론이 표본이 되었다. 182

 

유클리드는 이집트 왕한테서 기하학을 알기 쉽게 가르쳐달라는 요청은 받았을 때 수학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유명한 말로 응답했다. 183

 

하나의 견해에 확신을 갖고, 동시에 초연한 태도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이다. 철학자와 과학자는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이럴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단련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수학은 이런 태도를 양성하는 데 놀라울 만큼 알맞은 학문이다. 많은 위대한 철학자가 수학자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수학이 문제의 단순성과 구조의 분명성 외에도 미를 창조하기 위한 그 어떤 여지를 준다는 것은 아마도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187

 

 

 

3장 헬레니즘

 

 

최고의 힘이나 성스러운 힘은 세계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에 스며드는 수분과 같이 세계에 고루 스며드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와 같이 신은 내재하는 힘이며, 그 일부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부에 살아 있다. 이런 견해는 근대에 들어와서 스토아학파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스피노자의 철학적 저술로써 유명해졌다. 203

 

신플라톤주의는 동방과 서방의 만남의 장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났다. 여기서는 페르시아와 바빌론의 종교가 영향을 미쳤고 이집트 의식이 잔재했으며, 자기 종교를 실 천하는 강대한 유대인 사회와 그리스도교 각 파들이 자리잡았는가 하면 헬레니즘 문화의 전반적 배경이 눈에 띄었다. 신플라톤학파는 암모니오스 사카스가 창시했다고 하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제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플로티노스(204-270), 그는 신플라톤학파 철학자 중에서도 누구보다 위대했다. 이집트 태생인 프로티노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배우고 243년까지 이 땅에서 살았다. 216

 

스토아학파과 신과 세계를 동일하게 본 것과는 달리, 플로티노스는 범신론을 부정하고 소크라테스의 견해로 돌아간다. 그러나 자연을영혼의 아래쪽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것은 그노시스파가 가르친 바와 같이 사악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플로티노스의 신비주의는자연이 아름답고, 사물의 성질상 가장 좋은 것이라고 주저 없이 인정한다. 이 사물에 대한 관대한 견해는 후기 신비주의자나 종교지도자, 철학자까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218-219

 

그리스 철학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의 운동이다. 정신을 무지의 속박에서 해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스 철학은 알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성이 세계에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 수단은 로고스이며, 그 동경은 의 형상 아래 지식을 추구하려고 한 일이다. 사심을 떠난 탐구 자체는 윤리적으로 선한 것이라 여기고, 종교적 신비보다도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선한 삶에 이른다는 것이다. 탐구의 전통과 함께 거기에는 감상적이 아닌 하나의 밝은 인생관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신선미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시대에 들어서고, 조금은 자의식적인 스토아주의가 보급되면서 어느 정도 상실되었다. 그런데도 서양문명의 지적 틀 속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모두 그 리스 사상가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222

 

 

4장 초기 그리스도교

 

그노시스파에 따르면, 감각할 수 있는 물질세계는 여호와가 창조했는데 이 신은 최고의 신과 사이가 틀어져, 그 뒤에는 나쁜 일만 해오던 작은 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침내 최고신의 아들이 구약성서의 잘못된 가르침을 뒤엎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빌려 사람들 사이에서 살게 되었다. 이것이 플라톤 철학의 일부분을 포함시킨 그노시스설의 내용이다. 이것은 그리스의 전설과 오르페우스 신앙의 신비주의적인 각종 요소를 그리스도 교의와 동방종교의 여러 영향을 혼합한 것으로, 대부분은 플라톤 철학과 금욕주의 철학을 임의대로 선택한 혼합물을 주워 모은 것이었다. 마니교를 따르는 후기 그노시스파는 정신과 물질의 구별을 선악의 대립과 동일시하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는 나머지 스토아학파가 감히 엄두도 내지 않은 곳까지 갔다. 그들은 육식을 금하고 그 어떤 형태의 성도 모두 죄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수세기 밖에 살아남지 않았던 점을 보면, 이 엄격한 가르침이 완전히 잘 실천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 232

 

그리스인의 관점은 당연히 범신론으로 끝난다. 이 범신론에 따르면, 신은 세계다. 이와 같은 사상의 경향은 어느 시대에서나 신비주의적 편향이 강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이 견해를 가진 가장 유명한 대표적 철학자는 스피노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성서의 창조주를 채택하지만 이것은 이 세상 바깥쪽에 있는 신이다. 이 신은 시간을 초월한 영혼으로 인과율도 역사적 발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은 세계를 창조할 때 세계와 함께 시간도 창조했다. 우리는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물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물을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243

 

서방의 수도원 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베네딕투스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베네딕트파 수도회의 이름이 생겼다. 그는 480년 귀족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로마 귀족 계급의 안일함과 사치 속에서 자랐다. 20세 청년이었을 때 자신이 받은 교육의 전통에 대한 심한 반발에 고통을 받아 3년 동안 동굴의 은둔자로 생활했다. 520년 그는 몬테카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했다. 이곳이 베네딕트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설립자인 베네딕투스는 회원에게 빈곤과 복종, 순결의 맹세를 요구하는 교파의 회칙을 만들었다 252

 

 

 

 

 

 

 

5장 스콜라 철학

 

신이 모순율을 무시할 수 있다는 요구는 전능이라는 관념의 어려움을 암암리에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이 전능하다면 돌을 무겁게 해서 신이 들어올릴 수 없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신이 정말로 전능하다면 들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신은 무거운 돌을 들어올릴 수도 있고, 들어올릴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순율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전능이라는 관념은 불가능한 관념이 된다. 270

 

스콜라 철학은 하나의 운동으로 결론이 사전에 제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철학과는 다르다. 그것은 정통 신앙의 궤도 내에서 작용해야 한다. 스콜라 철학이 고대인 중 에서 수호신으로 받든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며, 그의 영향은 차츰 플라톤의 영향으로 대체된다. 방법적으로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적 방식에 따르는 경향이 있으며, 변증법적 논증을 사실에는 거의 관련시키지 않고 사용했다. 가장 큰 이론적 문제 중 하나는 철학계를 분열시켜서 대립하는 진영을 만든 보편적 개념의 문제였다. 실재론자는 플라톤과 이데아론에 따라서 보편적인 것은 사물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유명론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호소하여 보편적인 것은 단순히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스콜라 철학은 보통 아벨라르의 스승이던 프랑스 성직자 로슬랭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279

 

 

신학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것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는 이른바 자연신학인데, 이것은 제1원인이나 제1발동자 등과 같은 논제의 전후관계에서 신을 논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이다. 그것은 형이상학 쪽에 놓여도 지장이 없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그리스도 교도로서 교의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내놓았다. 이것은 계시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를 논한다. 여기서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저술가,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의존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로 인정하는 듯한 은총과 구원을 연구했다. 계시를 통한 문제들은 실제로 이성 너머에 있다. 288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하나의 사심을 떠난 설계자라고 보고 있다. 존재를 특수한 사물에 주어야 한다고 보고 있지 않다. 특수한 사물은 단순히 거기에 있을 뿐이며, 이들 사물이 만들어진 소재 또한 그렇다. 그러나 아퀴나스에게 신은 모든 존재의 원천이다. 유한한 사물은 단지 우연히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 존재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의존하며, 이 어떤 것이 바로 신이다. 스콜라 철학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본질과 존재라는 말로 표현된다. 사물의 본질이란 그것의 성질, 즉 사물의 본성이다. 존재는 사물이 있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명사이다. 이들 명사는 본질도 존재도 독립적일 수 없다는 뜻에서 추상적이다. 구체적인 사물은 변하는 일이 없이 양쪽을 모두 가지고 있다. 288

 

신의 존재 증명의 네 번째는 유한한 사물의 완전성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완전한 어떤 존재를 전제로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논증은 자연계의 무생물도 세계에 질서가 넘치고 있는 이상, 그 어떤 목적에 봉사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든다. 이것은 무생물이 자신의 목적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목적이 충족된 바깥쪽의 지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논증은 목적론적 논증 또는 신학적 논증이라고 불리는데, 이 논증에서는 질서가 설명되어야 하 는 것으로 가정된다. 291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한다는 것은 헛되다라는 오컴의 말.실재물을 필요 이상으로 수를 늘려서는 안 된다는 오컴의 또 다른 유명한 말의 근본은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오컴의 면도날은 현상을 만족하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간단한 설명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복잡한 것을 구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297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결여되었다. 그리스인에게 인간은 물려받은 개인의 무거운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307

 

그리스인에게 덕이란 덕 자체의 보상인 반면, 그리스도 교도는 신이 덕을 가져야 하다고 명하기 때문에 덕을 가져야 했다. 덕의 좁은 길을 따라간다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것은 필요조건이었다. 309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플라톤 철학보다도 훨씬 그리스도교 체계와 조화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플라톤 이론은 이를테면 스피노자의 경우처럼 범신론적 가르침을 북돋는 데 적합하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완전히 논리적이다. 철학과 신학의 결합은 이성이 어느 정도 신앙을 지지할 수 있다면 유지할 수 있다. 14세기 프란체스코 수도회 학자가 이 가능성을 부정하고 이성과 신앙은 서로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을 때, 중세적인 사고방식은 차츰 쇠퇴하고 있었다. 신학 분야에서 철학이 할 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컴은 신앙을 합리적 연구와의 있을 수 있는 모든 연관에서 해방시키면서, 철학을 비종교주의로 되돌리는 길을 열었다. 16세기 이후 교회는 더 이상 이 분야를 지배하지 못 했다. 310

 

 

 

6장 근대 철학의 융성

 

종교적 원인도 경제적 원인도 다같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나타내는 전반적인 변화의 징후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개혁파의 종교와 그 청교도적 특징은 근대 교역의 융성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종교 다툼이 1598년 낭트에서 관용의 칙령이 포고되면서 한때 가라앉았다. 그것이 1685년 취소되자 많은 위그노 들은 고국을 떠나 영국과 독일에 정착했다. 337

 

 

이탈리아 인본주의자들의 사상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수학적 전통이 새삼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세계의 수적 구조가 다시 강조되어, 여태까지 이 구조의 존재를 무색하게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과 대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16,7세기의 과학적 탐구의 눈부신 부흥을 가져온 중요한 발전 중 하나였다. 339

 

과학의 부흥은 르네상스의 피타고라스적 전통에 직접 입각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전통의 경우, 예술가와 과학적 탐구자가 하는 일 사이에 아무런 대립도 없었다는 것은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양쪽 모두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진리를 구하고 있는데 그 본질은 수를 통해서 파악되었다. 341

 

 

1687년에 나온 뉴턴의자연과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그는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설명하고 이어 역학의 연역적 설명을 그리스 식으로 전개했다.

1법칙은 갈릴레이의 원리를 일반화해서 말한 것이다. 모든 물체는 방해 받지 않으면 전문 용어로 발해서 등속으로, 일직선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2법칙은 힘을 비등속 운동의 원인이라고 정의하여, 힘이 질량과 가속도의 곱에 비례한다고 규정했다.

3법칙은 모든 작용에는 서로 동등한 반작용이 있다는 원리이다. 천문학에서 뉴턴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가 첫걸음을 내디딘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하게 설명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물질의 그 어떤 두 분자 사이에는 그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348

 

베이컨은 르네상스의 전통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법률과 역사에 대해 썼고, 에세이로 유명하다. 이 문학적 형식은 프랑스의 몽테뉴(1533-1592)가 생각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베이컨의 철학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은학문의 진보, 1605년 출판되었고 영어로 쓰였다. 351

 

 

 

인간이 빠지기 쉬운 여러 오류에 대한 베이컨의 설명은 그의 철학 가운데 가장 빛난다. 우리는 네 가지 유형의 정신적 약점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이것을우상이라 고 부르는데,

첫째는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다. 희망적 생각이 그 한 에일 것이다. 특히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으로 큰 질서를 자연현상에 기대하는 것이 그렇다.

둘째로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각 개인적인 왜곡을 말하는 것으로 그 수는 무수하다.

시장의 우상정신이 언어에 현혹되기 쉬워지는 경향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로 특히 철학에 유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극장의 우상은 체계나 사상의 유파에서 일어나는 오류다. 353

 

홉스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기하학이야말로 오늘날의 유일한 과학이다. 이성의 기능은 기하학처럼 논증의 성격을 띤다. 우리는 정의를 세울 때, 자기 모순에 빠진 관념을 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정의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성은 이런 뜻에서 실천을 통해서 획득한 그 무엇이며, 그것은 데카르트가 주장하듯 타고난 것은 아니다. 이어 그는 감정을 운동으로 설명한다. 감정의 자연상태에서는 만인은 평등하며, 저마다 남을 희생시켜 자기를 보존하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만인과 만인이 겨루는 전쟁상태가 존재한다고 홉스는 생각한다. 356

 

데카르트는 논리학과 기하학, 대수학에서 네 가지 법칙을 찾아낸다.
첫째는, 분명하고 명백한 관념 말고는 아무것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하나하나의 문제를, 그 해결에 필요한 만큼의 부분으로 나누어야 한다.
셋째는, 사고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에 이르는 질서를 따라야 하며, 질서가 없을 경우에 우리는 질서를 가정해야 한다.
넷째는, 우리가 빠뜨린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언제나 철저하게 대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데카르트가 대수학을 기하학 문제 에 적용했을 때 사용한 방법으로 이와 같이 해서 오늘날의 해석기하학이 생겼다. 360

 

해석기하학을 철학에 응용하는 것은 나이를 더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데카르트는 느꼈다. 윤리학에서 우리는 딜레마 상태에 있다. 그것은 과학의 서열상 마지막에 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삶에서 바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실용적 기준에서 가장 좋은 생활조건을 줄만한 잠정적인 행동법을 채택한다. 그 결과 그는 자기 나라의 법률이나 관습을 지키고, 자신의 종교를 믿기로 결심한다. 일단 어떤 행동을 하려고 결정하면, 결단과 인내를 가지고 행동하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명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억제하고, 자기 희망에 사물의 질서를 맞추기 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사물의 질서에 맞추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데카르트는 철학에 전념하기로 마음먹는다. 361

 

외연과 운동이라는, 외관과 관계 없는 일반 관념은 데카르트에게는 타고난 관념이며, 순수 지식은 근본적으로 이런 성질의 것이다. 감관지각은 색채, 미각, 촉각과 같은 이 차적 성질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사실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초 조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상이라는 유명한 예를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 정한 것은 외연으로, 이것이야 말로 정신이 인식하는 타고난 관념이다. 363

 

 

 

 

 

실체는 무한한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밝힌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한계가 그 실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와 같은 실체는 단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은 세계 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실체는 신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신과 우주, 즉 모든 사물의 총체는 같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유명한 범신론이다. 스피노자는 정신과 물질은 하나의 실체가 보이는 두 가지 국면이라고 생각했다. 370

 

자유인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 악은 부정적인 것이므로, 결점이 전혀 없는 총체적인 존재인 신이나 자연이 악일 리가 없다. 모든 것은 유일한 이 세상의 가장 좋은 것을 위해 있다. 실제로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우주와의 접촉을 위해 자기를 보존하도록 행동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 체계의 대략적 윤곽이다. 372

 

스피노자가 극단적인 일원론을 주장했다고 한다면, 라이프니츠의 해답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무한한 실체를 가정한다. 두 이론은 몇 가지 점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이론과 원자론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라이프니츠의 이론은 결국 실체는 하나이므로 외연을 가질 수 없다는 고찰에 바탕을 둔다. 이것이 다원론을 함축하고 나아가서 실체의 한 집단만을 특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는 무한히 많은 실체가 있고 그 하나하나는 외연을 가지지 않으므로 비물질적이라고 추론한다. 이들 실체는 單子라고 불 리고 조금 일반적인 뜻에서 영혼이라는 본질적인 속성을 갖는다. 373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에 대한 이론은 앞서 말했듯이 단자에 의해서 실체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실체는 서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곧 그 어떤 두 개의 단자도 인과적으로 결부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실제로 둘 사이에는 그 어떤 참다운 관련도 없다. 이것은 단자에는 창이 없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376

 

단자는 저마다 다른 위치를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옳지 않을 것이다. 단자는 시공적 실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과 시간은 실재가 아닌 감각현상이다. 공간과 시간의 배후에 있는 실재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갖는 단자의 배열이다. 하나하나의 단자는 약간씩 다르게 우주를 비치는 것으로 둘 다 정확히 같지가 않다. 두 개의 단자가 정확하게 같다면, 그때 그것은 사실상 하나로 동일한 것이다. 377

 

넓은 뜻으로 모든 단자는 영혼이며, 이들은 모두 비물질적이고 불멸한다. 두드러진 단자, 즉 영혼은 지각이 명료해서 눈에 띌 뿐 아니라, 그 예속물이 예정된 조화로운 방식으로 기능을 드러낼 목적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생기지만, 자유의지는 인간이 논리적 엄격한 강제력 없이 행동할 때만 허용된다. 신도 이런 종류의 자유를 누린다. 다만 신에게는 논리의 법칙을 침범할 자유는 없다. 스피노자의 자유의지론은 남의 마음에 거스르는 반면, 라이프니츠의 자유의지론은 호감을 사는데 이런 자유의지론은 단자를 가지고는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며 사실상 단자론과 모순되는 것이다. 377

 

신의 존재라는 영원한 문제에 대해서,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이미 만난 형이상학적 논증 중 주론을 완전히 해석하고 있다. 네 가지 논증 가운데 첫째는, 성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이고, 둘째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볼 수 있는 제1의 원인에서 나오는 논증의 한 형식이다. 셋째는 필연적 진리에서 나오는 논증으로, 이것은 성스러운 정신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예정된 조화에서 나오는 증명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목적에서 나오는 논증이다. 378

 

라이프니츠는 두 개의 논리원칙을 기본적인 공리로 받아들인다. 첫째는 모순율로, 모순하는 두 명제 가운데 하나는 옳고 다른 하나는 틀려야 한다는 원리이다. 둘째는 이전에 언급한 충족이유율로, 일정한 상태가 충분히 먼저 생겨난 이유에서 나오게 된다는 원리이다. 379

 

명백하고 분명한 관념에 집중하고 그 결과로 완전한 세계적 언어를 탐구한 일은, 데카르트학파의 전통을 잇는 합리주의적 연구의 2대 특징이다. 380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연 자체는 신이 만든 것이고, 따라서 신만이 자연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해서 무엇인가 배우고 싶다면 인간은 수학적 절차보다도 오히려 실험과 관찰에 따른 경험적 방식을 채용해야 한다. 비코는 데카르트보다 베이컨에게 훨씬 공감했다. 382

 

 

 

 

홉스와 루소가 말한 사회계약론은 전형적인 합리론자의 왜곡이다. 그것은 기계적으로보다는 거의 수학적으로 본 사회이론이다. 비코의 이론은 그에게 인간을 포함한 사회 조직을 자연적이고 점진적인 성장으로 보게끔 해주었다. 여기서 인간은 전통을 쌓으면서 공동사회생활을 발전시켜 나간다. 한편, 사회계약은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존재라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된다고 가정한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삶을 새로운 사회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386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언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언어를 분명하게 규정된 계산의 규칙으로 보는 극단적 합리주의자의 관점으로 이는 널리 퍼져 있는 분명하고 명확한 관념이 언어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라이프니츠의 방식이다.

이와 반대로 완성된 그대로의 자연 언어를 전달의 적절한 수단으로 보는 한편, 형식화하는 시도를 왜곡으로 보고 거부하는 비코의 방식이다. 이와 같은 견해에 서면, 논리의 기능은 실제로 필요 없게 되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언어 자체를 적극적으로 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두 견해는 잘못되어 있다. 387

 

 

7장 영국경험론

 

자유주의적 태도의 지배적 특징은 개인주의의 존중이었다. 양심 문제에서 신교의 신학은 권위가 규칙을 정하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개인주의는 경제와 철학의 분야에도 스며들었으며, 경제학에서는자유방임으로 나타나고 이것의 합리화는 19세기에 공리주의로 나타난다. 철학에서 개인주의는 지식의 이론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데카르트의 유명한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공식이 개인주의의 전형이다. 모든 사람이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의 개인적 존재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393

 

데카르트의 철학서에서 발전의 주류가 두 갈래로 흘러나왔다.
하나는 합리론적인 전통의 부활로, 17세기의 중심인물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였다
.
또 하나는 일반적으로 영국경험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394

 

존 로크의 인식론적 탐구는 두 가지 뜻에서 경험적인 비판 철학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첫째, 합리론자처럼 인간의 지식 범위를 미리 판단하지 않고, 둘째, 감각경험이라고 하는 요소를 강조한다. 따라서 이 방식은 버클리나 흄이나 J.S밀이 소행한 경험론적 전통의 단서를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칸트의 비판철학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로크의인간오성론은 이와 같이 새로운 체계를 제공하려고 하기보다는 예부터 내려오는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396

 

정신은 한 장의 백지와 같다. 여기에 정신 내용을 부여하는 것이 경험이다. 이들 내용을 로크는 매우 넓은 뜻의 말을 빌려 관념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관념은 그 대상에 따라서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먼저 우리의 오감을 통한 외계 관찰에서 오는 감각의 관념이 있다. 또 하나는 정신이 자기를 관찰할 때 생기는 반성의 관념이다. 397

 

 

 

로크는 관념이 사물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 관념을 나타낸다는 견해에 이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관념이 인습적 기호가 아니고, 언어가 인습적 기호라는 차이가 있다. 경험은 우리에게 특수한 관념밖에 주지 않으므로, 정신 자체의 작용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관념을 낳는다. 언어의 기원에 관한 그의 견해는, ‘인간오성론에 우연히 표현되지만 비코처럼 은유의 역할을 인정한다. 399

 

그 어떤 사물도 그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경험에서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뜻을 형성하는 것이고, 따라서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한다는 것과 같다. 이 견해에 따르면, 경험되지 않는 경험이나 지각되지 않는 관념을 운운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입장은 현대 철학자로서 지식에 대한 현상학적 이론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주장한다. 이와 같은 이론에 서면, 감각되지 않는 감각데이터는 없다. 추상 관념에 대해서는 그것이 적어도 가능하다고 한다면, 경험할 수 없는 그 어떤 실재를 나타내야 하고 이것은 로크의 경험론을 부정한다. 경험적인 관점에 서면 실재는 경험할 수 있는 것과 같다. 408

 

조지 버클리(1685-1753)는 추상 관념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상과 관념 사이의 로크의 구별 전체와 그 결과로 생기는 지식의 모사 이론까지 거부한다. 우리는 일관된 경험론자로서 모든 경험이 감각과 반성의 관념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관념은 그 자체가 알려지지도 않고 또 알 수도 없는 대상과 부합된다고 주장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로크에게는 이미 나중에 칸트가 사물 자체와 현상 사이에 그은 구별을 예상케 하는 것이 있다. 버클리가 사물 자체 같은 건 전적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이것을 로크의 경험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거부하는 점은 매우 옳다. 이것이 버클리 관념론의 요점이다. 409

 

연속적이지 않다면 지각끼리의 관계는 달리 지각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데카르트적 합리론과 로크 일파의 경험론 사이에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합리론자는 사물끼리의 사이에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흄은 이와 같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거부한다. 또는 있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로 이것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상 또는 관념의 연속뿐이며, 따라서 달리 더 깊은 관련이 있는가의 여부의 문제는 생각하는 것조차 낭비라는 것이다. 416

 

동일성, 시공관계, 인과성과 같이 우리가 추상적 추리를 행할 수 없는 것일 경우, 우리는 경험에 의존해야 한다. 인과성은 이들 중 유일하게 순수한 추리 기능을 갖는다. 동일성과 시공의 관계는 이에 의존하게 된다. 대상의 동일성은 그 어떤 인과적 원리에 입각해서 추론 되어야 하고, 이 점은 시공적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엄밀 하게 말해서 그 이론을 바탕으로 흄이 관념만을 언급할 때 그가 경솔하게 대상에 대한 보통 화법에 빠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420

 

과학자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우리가 스피노자와의 관련에서 살펴본 대로 합리론이 훨씬 잘 그려내고 있다. 과학의 목적은 결과가 원인에서 나온다는 연역적 체계에 따른 인과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설득력 있는 논증이 필연적으로 전제에서 나온다는 결론과 같다. 그러나 흄의 비판은 전제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옳다. 이에 대해 서 우리는 탐구적 또는 회의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423

 

 

 

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철학적으로 보았을 때, 낭만주의 운동은 하나의 영향을 두 가지 반대 방향으로 미쳤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첫째는 이성을 지나칠 만큼 강조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우리가 착수하는 문제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머리를 돌리기만 하면 모든 어려움은 영원히 해결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낭만적 합리론은 17세 기의 사상가에게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독일 관념론의 저서와 나중에 마르크스 철학에 나타난다. 431

 

볼테르(1694-1778)는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신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제도로서의 그리스도교에는 거세게 반대했지만, 어떤 초자연력을 믿고 사람들이 선한 삶을 살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인습적 부착물을 모두 없앤 펠라기우스주의와 같다. 동시에 그는 우리 세계가 있을 수 있는 모든 세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하는 라이프니츠의 관점을 비웃고, 악을 우리가 싸워야 하는 적극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여기에서 인습적인 종교에 대한 그의 격렬한 싸움이 비롯된다. 432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방식은 신의 존재를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런 지식은 이성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윤리학에서 루소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마음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데 반해, 이성은 우리를 현혹한다고 주장한다. 이 낭만주의는 물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스콜라 철학과 배치된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완전히 자의적이며 행위자에게 정서적인 뒷받침만 있으면 문자 그대로 어떤 행동도 좋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연 종교에 대한 이 설명 전체는에밀안의 한 에피소드에서사보아의 보조 사제의 고백으로 표현된다. 437

 

칸트는 흄이 한 것처럼 경험에 따라서 개념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개념으로 경험을 설명하려고 했다. 어떤 뜻에서 우리는 칸트 철학이 한편으로는 영국 경험론의 극단적인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적 합리론의 고유한 원리 사이에서 하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440

 

감관경험은 지식에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식이 취하는 형식, 즉 경험의 소재를 지식으로 전환하는 구성의 원리 자체는 경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칸트는 생각한다. 칸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디 데카르트가 이들 원리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와 같이 정신이 경험을 지식으로 만든다 는 이성의 일반 관념을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써서 범주라고 부른다. 지식은 성격상 명제적이므로 이들 범주는 명제의 형식과 이어져야 한다. 441

 

칸트는 명제를 서로 구별하는 방법과 함께 다른 분류 기준을 도입한다. 원칙적으로 경험과 무관한 지식을 그는아프리오리(연역명제)’라고 부른다. 나중에 경험에서 나오 는 것은 무엇이든지아포스테리오리(귀납명제)’라고 부른다. 441

 

 

 

(칸트의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논리학자는 양에 대해서 全稱과 特稱과 單稱의 명제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것은 단일성과 복수성과 총체성이라는 범주이다. 명제의 성질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한정적인가로 저마다 실재와 부정과 한계라는 범주를 나타낸다. 관계에서 우리는 명제를 정언적인 것과 가언적인 것과 선언적인 것으로 나누어, 여기에서 실체와 우연, 원인과 결과, 그리고 상호작용이라는 범주를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명제는 세 개의 양식적 성격 중 하나를 갖는다. 그것은 문제적이냐, 단언적이냐, 필연적이냐의 문제이다. 이들에 대응하는 범주는 가능성과 불가능성, 존재와 비존재, 마지막으로 필연과 우연의 범주이다. 443

 

의지는 행동이 인식의 이론적 과정과 대비된다는 뜻에서 실천적이라고 한다. 이론적과 실천적이라고 하는 두 말의 뜻은 각기 보는 일과 하는 일을 결부시켜서 그리스어 자체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천이성의 근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여기에서도 칸트는 코페르티쿠스적 전환에 가까운 것을 도입한다. 그때까지 윤리학이 언제나 의지는 외적 영향에 지배된다고 단정했다면, 칸트는 자기마음대로 하는 것이 의지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446

 

칸트는해야 한다란 말이 수반되는 설명이 무조건적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여 이것을 정언적 명령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윤리의 최고 원리는 다음과 같은 정언적 명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지를 인도하는 원리가 보편적인 법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행동하라.” 조금은 엄격한 이 발언은, 실제로는 남이 해주었으면 하고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남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의 그럴듯한 말일 따름이다. 447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신의 존재를 논증으로 확립한다는 것은 이론적 이성의 범위 내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 일이 있었다. 순수이성의 사변 활동은 신의 존재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념에 근거를 부여하는 것은 실천이성이다. 정말로 실천이성 분야에서 우리는 이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없으면, 올바른 도덕 활동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가 생각하기에 도덕률의 정언적 명령에 따라서 행동할 가능성은 신이 존재한다는 실천적인 의미를 암암리 에 동반한다는 것이다. 449

 

헤겔 변증법의 원리는 진행이 마지막에 이르게 되는절대자야 말로 단 하나의 실재라고 선언한다. 특히 이 점에서 헤겔은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는다. 전체의 그 어떤 단편 도 그것만으로는 생명력이 있는 아무런 실재성도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다. 절대자는 우주 전체와 관련될 때야 비로소 뜻 깊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감행해야 할 유일한 명제가절대적 정신은 실재다라는 것과 같다. 전체만이 진실이다. 456

 

어떤 사람이 언제나 벽돌담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벽돌이 두개골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완고하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자유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자유는 환상을 갖는 것보다도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인정하는 일이며, 필연적인 작용을 파악하는 일이다. 458

 

 

 

헤라클레이토스와 마찬가지로 헤겔도 다툼을 매우 중요시 한다. 그는 전쟁이 평화보다도 도덕적으로 우위에 선다고까지 말한다. 국민은 사울 일이 없으면 도덕적으로 약체 가 되어 퇴폐한다는 것이다. 458

 

만물은 움직인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진술과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진술은 반대 명제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것도 있다는 말로, 헤라클레이토스의 관점에 단순히 반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두 진술은 모순된다. 어느 경우나 우리는 움직이는 것도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있다는 타협에 이를 수 있다. 462

 

빈곤함과 부유함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를 뿐이다. 헤겔은 정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중대한 구별을 무시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서 변증법이 단지 지식 이론의 도구로 적용될 뿐만 아니라 직접 세계의 기술로서 적용되는 것은 왜 그런가 하는 것도 이 견해에 서면 쉽게 알 수 있다. 전문 용어를 빌리자면 헤겔은 그 방법에 단지 인식론적 지위뿐 아니라 존재론적 지위도 주는 것이다. 이 바탕에서 헤겔은 더 나아가 자연을 변증법적으로 설명한다. 463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헤겔은절대자가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견해로 볼 때, 언제나 사건 뒤에 생기는 철학체계를 수립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것을법철학서문에 인상적으로 표명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닥쳐오지 않으면 날지 않는다.” 헤겔의 철학은 철학사 전체를 통해서 몇 번이고 나오는 총괄적 원리에 영향을 받는다. 만일 우주를 전체적인 배경으로 보지 않는다면 세계의 부분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전체야 말로 유일한 실재이다. 이런 관점은 이미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었다. 파르메니데스가 우주는 움직이지 않는 구체라고 한 것도 이런 종류의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한 것 이고,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학적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이 수라고 말한 것은 이런 생각을 암시한 것이다. 465

 

헤겔의 학설과 로크의 자유주의는 정반대이다. 헤겔에게 국가란 본디 선이며, 시민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체의 영광에 기여해야만 비로소 중요해진다. 자유주의는 다른 쪽에서 출발하여 국가를 여러 성원의 개인적 이익에 이바지 하는 것으로 본다. 관념론적인 관점은 손쉽게 불관용과 잔인함과 압제를 낳는다. 자유주의 원리는 관용과 관용과 배려와 타협을 촉진한다. 468

 

프리드리히 셀링(1775-1854)이 헤겔의 체계를 비판한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자. 셀링은 소극적 철학과 적극적 철학을 구분한다. 스콜라 철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소극적 철학은 개념이나 보편, 본질 등과 관계가 있다. 그것은 사물의본질을 다룬다. 한편 적극적 철학은 현실의 실존, 또는 사물의실재에 관계된다 셀링은 철학이 소극적 단계에서 출발하여 적극적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셀링이 양극성의 원리와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면서 정확하게 이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469

 

 

 

 

 

실존주의 원리는 존재가 본질보다 앞선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처음에 하나의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이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또 이것은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 앞에, 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플라톤 앞에 놓는 것이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의지를 이성 앞에 놓고 인간이 지나치게 과학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루기 때문에 외부에서 사물에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키에르케고르는 하나의 상태를 안에서 파악하는실존주의적 사고방식을 인정한다. 그는 우리가 과학적으로 인간에 접근하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느꼈다. 개인의 특수한 감정은 실존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470

 

이성을 과소평가하는 일은 과대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좋다. 헤겔은 이성을 너무 존중해서 이성이 우주를 낳을 수 있다는 오류에 빠졌다. 키에르케고르는 정반대 의견을 내어 이성은 우주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471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고통에 찬 이런 상태의 해결은 불교의 신화에서 구해야 한다. 우리의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리 의지의 작용이다. 의지를 속이면 우리는 결국 열반, 즉 무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신비적 황홀 상태의 환상을 의미하는마야의 베일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를 하나로 보게 되고, 이 지식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의지를 정복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의 일자성에 대한 지식은 에크하르트와 같은 서양 신비주의자의 경우나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세계의 경우처럼, 신과의 교류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체를 통찰하고 그 고통을 공감한다면 우리는 무로 도피하게 된다. 475

 

니체가 마음속에 그리는 국가에는, 플라톤의공화국의 이상 국가와 다분히 공통된 점이 있다. 그는 전통적 종교를 노예 도덕의 지주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인간형이다. 노예 도덕의 진부한 실례를 그는 그리스도교에서 들고 있다. 479

 

9장 공리주의 이후 공리주의에서 중대한 결론이 두 가지 나온다. 첫째는 몇 가지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한결같이 행복에 대한 강한 충동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만인은 모두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 견해는 그 무렵에는 조금 참신해서, 과격파 개혁안의 중심 교리 가운데 하나를 이루었다. 또 추론은 최대 행복은 사정이 안정되어 잇는 경우에만 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등과 안전은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해야 할 일이다. 벤담은 자유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권과 마찬가지로 자 유도 그에게는 조금 형이상학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정치적으로 벤담은 민주주의보다는 오히려 관대한 전제주의를 좋아했다. 490

 

귀납법 논리의 영원한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는 귀납적으로 논증하는 정당한 이유를 찾는 일이었다. J.S.밀은 이와 같이 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근거를 주는 것이자연의 항구 불변성에 대한 관찰이라는 견해를 채택하는데 실은 이것 자체가 최고의 귀납법이다. 492

 

 

 

 

 

쾌락이란 바라는 것이라고 정의한 경우와 같이 평범한 의미를 없앤다면, 비록 욕망이 충족되어 실제로 내가 쾌락을 얻는다 해도 내가 바라는 것이 쾌락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옳지 않다. 게다가 거기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을 때, 내가 이 욕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것이 나의 삶에 직접적인 관계도 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말이 경주에서 이겨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걸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리주의 원리는 많은 중대한 결점을 면치 못한다. 494

 

사회주의에 철학적 바탕을 주는 일은 마르크스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은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바탕으로 삼고, 철학적 논의의 수단은 헤겔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했다. 그래서 공리주의는 하나의 발판이 되어 여러 이론을 낳고 마침내 한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499

 

역사과정은 변증법적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마르크스의 해석은 방법상 철저하게 헤겔적이다. 단 추진력은 두 가지 경우 다르게 생각한다. 헤겔이 볼 때 역사 진로는절대자를 향해 노력하는 정신의 점차적 자기 실현이다. 마르크스는 정신 대신에 생산양식을 놓고, ‘절대자대신계급이 없는 사회를 놓는다. 501

 

찰스 샌더스 퍼스(1839-1914)의 주장에 따르면, 특수한 진리의 뜻에 대해서 어떤 진술이라도 진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결과를 수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술은 그 어떤 미래의 행동가능성과 모든 상황에 따라 알맞게 행동하려고 하는 기질의 형성이 인정해야 한다. 진술의 뜻은 이들의 실제적인 결과에 있다고 한다. 제임스가 프래그머티즘을 채택한 것도 이런 형식에서이다. 그러나 퍼스의 관점이 비코의진리는 사실이라고 하는 공식과 다분히 일치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진리란 당신이 자기 진술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512

 

경험론 대 합리론이라는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 윌리엄 제임스가 설정한 유명한 구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합리론자의 이론은 물질적인 것을 희생하고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성격상 낙천적이며 단일성을 구하고 실험을 무시하고 반성을 부추긴다. 이와 같은 이론을 받아들일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제임스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다른 편으로는 경험론적 이론이 있는데, 이것은 물질적인 세계에 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비관주의적이고, 세계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고안보다도 실험을 좋아한다. 이런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은 외골수적인 정신의 소유자이다. 이 구별은 본디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용주의 이론은 이들 중 외골수적인 정신 쪽을 결정적으로 편들게 된다. 제임스는 1907년의프래그머티즘이라는 논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며 이 이론에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편으로 프래그머티즘은 제임스가 경험론적 태도와 동일시한 방법이다. 516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공저, ‘수학원리에서 이와 같은 역설이 수의 정의에 관련해서 제기되었다. ‘모든 부류의 부류라는 관념이 그 원인이다. 모든 부류의 부류 자체는 하나의 부류이며, 따라서 그것이 모든 부류의 부류에 속한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류는 그 항의 하나로서 그 자체를 포함한다. 물론 이 특성을 갖지 않는 다른 많은 부류가 있다. 모든 유권자의 부류 자체는 보통선거의 이익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부류에서 자신의 항이 아닌 부류를 생각할 때, 이 역설이 생긴다. 524

 

10장 현대철학 19세기에는 또 다른 문자 그대로 말의 혼란이 일어났다. 먼 옛날부터 모든 나라의 학자 사이에 공통된 표현수단이 되었던 라틴어가 시들어 마침내 사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19세기 지적 생활의 또 다른 새로운 특징은 예술과 과학이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 인본주의자들이 보였던 경향과는 대조적이다. 531

 

철학에 대한 과학의 반동은 결국 콩트의 실증주의의 결과이다. 우리는 콩트가 가설의 수립을 몰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점을 이미 살펴보았다. 자연의 운행은 기술되어야 하는 것이지 설명될 일이 아니다. 이런 계획은 몇 가지 점에서 그 시대의 과학적 낙천관의 전반적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534

 

관념론 철학자들은 헤겔식으로 모든 탐구 부문을 하나의 커다란 포괄적 체계로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맞서 과학자는 자기들의 연구가 일원론 철학에 매몰되어서 는 안 된다고 느꼈다. 실증주의가 경험과 경험의 기술 범위 내에 머물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의식적으로 칸트와 칸트학파에게 한 호소와 연결되어 있었다 현상의 근거를 살피고 동시에 이에 설명을 부여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한다는 것은 누메나적인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서는 설명의 범주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설명은 터무니 없는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535

 

가설은 자체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설명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가설이 보류되면 그것은 이미 설명되지 않은 것으로, 설명되지 않은 채로 있는 다른 가설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단숨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증주의자가 어떠한 것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 점은 잘못이다. 모든 가설을 배제할 결심을 정말로 했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536

 

 

 

F.H.브래들리(1846-1924)는 옥스퍼드에서 연구하며 저술활동을 했는데,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거부하고 헤겔의 절대적 정신보다는 오히려 스피노자의 신 또는 자연을 연상케 하는절대자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가 논의하며 따르는 변증법은, 헤겔에게서 볼 수 있는 유기적 발달의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플라톤과 그 선구자 엘레아 학파의 전통을 잇는 추론상의 무기였다. 실제로 브래들리는 헤겔의 지적 일원론이 인식과 존재를 동일하게 보려는 경향을 갖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든 반대한다. 이런 견 해는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 학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538

 

브래들리는 가상을 처리하고 절대자에게서 실재를 본다. 이것은 엘레아 학파의일자, 합리적 사고수준에서보다도 직접적이고도 내부적인 수준에서 경험한 것으로 보인 다. 이 절대자 이론에서는 모든 차이가 합해져 하나가 되고, 모든 분쟁도 해결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상이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생각도 하고 과학도 실천하지만, 이것은 우리를 가상에 빠뜨린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은 보통의 세계에서 현상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절대자의 수준에서는 이들의 불완전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540

 

베네데토 크로체(1866-1952)는 발전의 개념에 대한 헤겔적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변증법적 진행이 아니라 비코의 발전단계설의 수정된 형태를 채택한다. 비 코는 이와 같은 발전이 순환적이고 따라서 결국 모든 것이 같은 출발점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 견해는 엠페도클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크로체는 이들 변화를 점진적인 것이라고 여겼고, 따라서 그 최초의 단계로 되돌아갈 때는 정신이 이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어느 정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541

 

인간은 진화를 거치면서 지능이 본능을 넘어서는 동물이 되었다. 베르그송은 분명히 루소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를 조금 불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의 지능은 본능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간에게 자유를 빼앗고 말았다. 지능이 스스로 자기 개념적인 속박을 세계에 강요하여 왜곡된 세계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능을 해방의 힘으로 보는 합리론의 이론에서 매우 먼 거리를 온 것이다. 544

 

철학으로서의 합리론은 인간 존재의 듯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개념의 전체를 사용할 때, 합리론자는 전반적인 기술은 주지만 이것으로는 각 인간의 경험의 특이한 맛을 포착할 수는 없다. 이 뚜렷한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실존주의는 키에르케고르가 실존주의적 사고양식이라고 부른 것에 의존한다. 합리론은 외부에서 세계를 다룰 때 직접적인 생활경험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다. 이것은 내부에서 실존주의적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561

 

사르트르의 경우,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실존주의적인 관점은 극한까지 가지고 갈 수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운명을 선택한다. 개인 삶에는 전통과의 연관성도 없고, 지나간 사건과의 연관성도 없다. 마치 모든 새로운 결단이 어떤 절대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불쾌한 진리에 겁을 먹은 사람들은 세계를 합리화하여 안정을 구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과학자도 종교신자도 일치한다. 둘 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 사르트르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모두 잘못되어 있다. 세계는 과학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 신도 니체의 시대 이래 죽은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사람은 분명히 우리에게 니체의 영웅을 상기시킨다. 이 근원에서 사르트르는 그의 무신론을 가지고 온다. 565

 

 

 

 

영국의 분석철학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한때 빈 학파와 접촉하고 있었다. 그는 빈학파 회원처럼 히틀러의 독일 폭풍이 불어 닥치기 전에 이 나라를 떠나 케임브리지에서 살았는데, 여기에서 1939 G.E. 무어가 교수직을 그만두었을 때 교수에 임명되었다. 생전에 세상에 나온 책은논리철학론뿐으로 이것은 1921년 출판되었다. 이 저서에서 그는 논리의 모든 진리는 동어반복이라고 했다. 573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생기고 어떠한 기능을 하며,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묻지 않고 적어도 그것을의 형상처럼 다루는 것은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다. 어떤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무엇인가 뛰어난 특질이나 숨은 지성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암묵 중에 기정사실로 여긴다. 576

 

 

맺는말

 

철학이 줄 수 있는 것은 경험적 연구의 결과를 바라보는 길이며, 이것은 과학이 발견한 것을 모아서 정리하는 말하자면 하나의 틀이다. 관념론이 이 정도로만 제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한계를 지키는 것이다. 동시에 과학을 실천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그 어떤 철학적 세계관에 휘말려 있다는 것을 지적해도 좋다. 578

 

자연 자체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 자연은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명제를 공식화하면서 오류에 빠진다. 아마도 실용주의적 이론의 한 동기가 이런 사실에서 나왔을 것이다. 오류가 이것을 범한 그 누군가와 결부되어 있다는 뜻에서 주관적이라고 한다면, 또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아무런 보증도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자기 주관적 의견에 싸여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잘못이다. 오류가 언제나 스며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우리가 옳지 않다고 주장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579

 

인간의 또 하나의 과제는 세계 안에서 행동하는 일이다. 과학적 측면은 수단과 관련되고, 여기에서 우리는 목적과 관계한다. 인간은 주로 사회적 본성 때문에 윤리적 문제에 부딪힌다. 과학은 어떻게 하면 목적을 잘 이룰 수 있는지를 인간에게 가르칠 수 있다. 과학이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갑의 목적보다도 오히려 을의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580

 

윤리적 판단이 내려지는 한, 이것을 특수한 집단에 한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정직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할 때, 이것은 우연히 논의되고 있는 사람들의 키나 체격이나 피부색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의 윤리 문제는 인간의 사해동포성 개념을 낳는다. 581

 

러셀, 그 지혜의 등불을 찾아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이 확증의 기초로 세운 것은
자동률(모든 사물은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모순율(어떤 것에도 그것에 어긋나는 것이 속할 수 없으며 또한 서로 어긋나는 성질이 함께 어떤 것에 속할 수 없다),
배중률(어떤 명제는 참인가 거짓인가 둘 중 하나이다)이다. 589

 

 

 

 

 

러셀의 견해는논리 원자론으로 불리는데 이 논리 원자론의 뿌리는 그가자신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배웠다고 말한 사상이었다. 이는 두 가지 공리로 시작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생각하기로 하던 본질이 변하지 않는 사실들이 있다. 또한 사실들과 관계가 있으며 그 사실관계에 따라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인 믿음 들도 있다.” 그러나 러셀 특유의 방식에 따라 이와 같이 단순한 두 가지 주장에서 많은 결론들이 나온다.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감추어진 의미와 참과 거짓의 진짜 위치가 드러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밝혀진다. 왜냐하면 논리학이 사실들의 구조, 즉 세상의 본질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598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