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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 잭 웨더포드

by mubnoos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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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정복자

ㆍ칭기스 칸은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ㆍ몽골군은 2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로마군이 400년 동안 정복한 것보다 많은 땅과 사람을 정복했다.

 

ㆍ칭기스 칸은 귀족적 특권과 출생에 기초한 봉건제를 부수고 개인의 장점과 충성심, 성취에 기초한 새롭고 독특한 체제를 건설했다. 그는 '비단길' 주변에 고립되어 있는 굼뜬 교역도시들을 점령하여 비단길을 역사상 가장 큰 자유무역지대로 조직해놓았다. 칭기스 칸은 전체적으로 세금을 내렸으며, 의사, 교사, 사제, 교육기관에는 완전히 면제해주었다. 정기적으로 통계조사를 했고, 처음으로 국제적인 역전 제도를 확립했다. 몽골은 부와 보물을 축적하는 제국이 아니었다. 대신 칭기스 칸은 전투에서 얻은 물자를 널리 분배하여 다시 상업적 유통망으로 들어가게 했다. 칭기스 칸은 국제법을 만들고 '영원한 푸른 하늘'의 법을 만민을 다스리는 궁극적인 최고의 법으로 규정했다. 대부분의 통치자가 스스로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 칭기스 칸은 통치자도 미천한 목자와 똑같이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복당한 모든 신민에게 종교와 관계없이 완전한 충성을 요구했지만, 영토 내에서 종교적 자유를 허용했다. 법의 지배를 내세우고 고문을 철폐했지만, 양민을 습격하는 도적떼나 테러리스트 암살자들을 찾아내 죽이기 위한 대규모 원정에는 서슴없이 나섰다. 그는 볼모를 잡아두는 관행을 없애고, 대신 모든 대사와 사절에게 외교적인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새로운 관행을 수립했다. 전쟁 중인 적대국가의 사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ㆍ알렉산드로스 대제는 33세의 나이에 바빌론에서 의문을 남기고 죽었다. 

 

ㆍ몽골인과 만났던 첫 유럽인 사절 플라노 디 카르피니는 칭기스 칸이 번개를 맞아 죽었다고 기록했다. 

ㆍ마르코 폴로는 칭기스 칸이 활에 맞아 생긴 무릎 부상으로 죽었다고 전했다. 

ㆍ미지의 적이 독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ㆍ어떤 사람들은 탕구트 왕의 마법 주문에 걸려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ㆍ포로로 잡힌 탕구트 왕비가 자신의 질에 기묘한 장치를 집어 넣어, 칭기스 칸은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다 성기가 찢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었다는 비방도 있었다. 

 

ㆍ몽골인은 과학기술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지도 않았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지도 않았고, 책이나 연극도 거의 쓰지 않았으며, 세상에 새로운 작물이나 영농기술을 내놓지도 않았다. 몽골의 장인은 직물을 짜지도 못하고, 금속을 주조하지도 못하고, 도기를 만들지도 못하고, 심지어 빵을 굽지도 못했다. 그들은 자기나 도기를 제작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고, 건물을 짓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군대는 여러 문화를 차례차례 정복하면서 이 모든 기술을 모아 이 문명에서 저 문명으로 전해주었다. 

 

ㆍ칭기스 칸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자신의 상을 조각하거나, 동전에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을 새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부] 초원의 공포정치: 1162~1206

 

ㆍ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면 한 사람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개인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1장 핏덩어리

ㆍ몽골군은 무기를 새로 고안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접촉한 다양한 문화의 무기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지식의 축적을 통해 손에 쥐게 된 세계의 무기들은 어떤 상황에도 응용이 가능했다.

 

ㆍ사람과 과학기술을 다루는 칭기스 칸의 능력은 40년 이상에 걸친 쉼없는 전쟁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천재적 능력, 부하들로부터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수완, 세계적인 규모의 조직을 꾸려 나가는 전례없는 기술 등은 살다가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또 직관적인 깨달음이나 공식 교육에서 얻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끝없이 되풀이되는 실용적 학습, 실험적 적용, 꾸준한 수정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그의 독특하게 단련된 정신과 집중력이 돋보이는 의지가 있었다. 그는 부하라에서 싸운 몽골 전사들 대부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전투에 뛰어들었으며, 싸울 때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웠다. 접전이 벌어질 때마다 추종자와 더불어 전투 기술도 늘었다. 거꾸로 전투를 할 때마다 새로운 구상을 적용하여, 군사 전술, 전략, 무기를 끊임없이 바꾸어나갔다. 그는 한 번도 똑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한 적이 없었다. 

 

ㆍ예수게이는 후엘룬을 납치한 직후 타타르와 싸우러 나갔다가 테무진 우게라는 이름의 전사를 죽였다. 아들이 태어난 직후에 돌아온 예수게이는 아이의 이름은 테무진이라고 지었다.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몽골족과 타타르족 사이의 끈질긴 적대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ㆍ테무진과 자무카는 어린 시절에 두 번이나 영원한 형제 관계를 맺자고 맹세했으며, 몽골 전통에 따라 의형제가 되었다. 

 

ㆍ테무진은 백테르를 죽여 배다른 형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금기를 어겼기 때문에 가족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 넣고 말았다. 


2장 세 개의 강

ㆍ자무카와는 결판이 나지 않았지만 테무진은 33세가 되던 1195년 예기치 않게 외부 침략과 대량 약탈의 기회를 맞게 되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공을 거두어 몽골족 사이에서 군사적 위엄이 높아지고 경제적 힘도 불어나게 된다. 

 


3장 칸들의 전쟁

 



[2부] 몽골 세계전쟁: 1211~1261

 

 

 


4장 황금 칸에게 침을 뱉다

 


5장 슐탄과 칸의 대결

ㆍ몽골족은 새로운 땅으로 계속 밀고 들어갔으며, 4년에 걸친 원정에서 파리를 잡듯이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을 점령했다. 

 

ㆍ칭기스 칸은 주민 살육자라기보다는 도시 파괴자라고 묘사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6장 유럽 원정대

 


7장 왕비들의 싸움

 


[3부] 세계 인식의 대전환: 1262~1962

 

8장 쿠발라이 칸의 새로운 몽골 제국

 


9장 팍스 몽골리카

ㆍ국제적으로 평화와 번영이 확대되어가는 엄청난 변화를 인정하여 14세기를 '팍스 몽골리카' 또는 '팍스 타타리카'라고 명명했다. 

 


10장 환상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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