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백년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by mubnoos 2022. 1. 5.
728x90

<백년의 고독>은 신화적 요소를 도입하여, 우르술란과 호세 아르까디오의 마꼰도라는 도시의 건설을 그리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사촌간으로 둘 사이의 근친 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자식이 태어날것 이라는 예언에 따라,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초기의 외부와의 접촉은, 멜키아데스를 중심으로 한 집시들의 방문이었고, 이들은 신기한 의부 문물을 마을 주민들에게 소개하게 된다. 이 신기한 의부 문물은 호세 아르까디오에게 외부 세계의 과학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자극하는 기제가 된다. 마꼰도의 고립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시장의 등장, 내전, 철도의 건설, 외국인 바나나 공장의 건설 등의 사건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하게 된다. 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공장 노동자들이 대량학살로 사망하고, 폭풍우와 가뭄이 농장을 파괴함에 따라 외국인 바나나 공장이 철수하고 다시 마꼰도는 고독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은 진보와 신식민지라는 중남미의 상황에 대한 반영으로 읽혀진다. 

 

 

 

 

1

 

 

ㆍ물건들이란 제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영혼을 깨우기만 하면 다 되는 겁니다.

 

ㆍ과학이 거리감을 없애버렸지요. 머지않아 인간은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볼 수 있다니까요. 

 

ㆍ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쇠붙이는 두려워해야 하는 법이니라.

 

ㆍ우리가 다시 잠들지 않는다면, 더 좋지 뭐. 그럼 우리 인생이 더 길어질 테니까 말이야.

 

ㆍ이긴다는 건 불가능해. 십자가를 들고 있는 아이들이 새겨진 부적을 지니고 있잖아.

 

ㆍ여자 없이 살기로 체념하고 있을 때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분노, 즉 고독하고 수동적인 좌절 속에서 서서시 해소되었던 막연한 분노의 감정이 생겼었다.

 

ㆍ마꼰도 사람들이 기억력이 회복된 것을 축하하는 사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멜키아데스는 옛 우정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집시는 마을에 머물 예정이었다. 그는 정말로 죽어 있는 몸이었지만 외로움을 참을 수 없어 돌아왔던 것이다. 삶에 충실했다는 벌로 모든 초자연적인 능력을 빼앗기고 같은 종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그는 아직 죽음의 손길이 미치치 않은 이 세계의 한쪽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은판 사진술 개발에 헌신하겠다고 결심했다.

ㆍ고독한 두 연인은 만년의 시간들, 무자비하게 흘러만 가는 불길한 시간들의 흐름을 거스르며 항해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들은 두 연인을 환멸과 망각의 사막으로 끌어내기 위해 쓸데없이 애를쓰는 데 소비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시간의 위협을 알게 된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무절제한 간통으로 배태된 아이를 세상에서 충실한 사랑으로 맞이하고자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최후의 몇 달을 보냈다. 밤에 침대에서 서로 포옹을 하고 있으면, 달빛 아래에 있던 개미들이 시끄럽게 설쳐대는 소리도, 좀벌레들이 시끄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도, 옆 방들에서 잡초들이 자라나는 지속적이고 선명한 바스락 소리도 그들을 겁주지 못했다. 

ㆍ건강이 회복되어 가느라 머릿속이 아른아른할 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레메디오스의 먼지낀 인형들에 둘러싸여 그 시들을 읽음으로써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회고했다. 그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장래성 없는 전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죽음의 언저리에까지 이르렀던 자신의 경험들을 여러시간에 걸쳐 운문속에 녹여냈다. 그러면 그의 생각은 아주 명쾌해졌고, 생각들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검증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그가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에게 물었다.
'친구,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게,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왜라니, 친구.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지'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대답했다.
'그걸 알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이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네' 그가 말했다.
'그것 참 안 됐군'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친구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었다.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 모르는 것 보다야 더 낫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그는 친구를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였다.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낫지' 

 

 

 

 

 

 

2

 

ㆍ남자들이란 일단 욕정을 채우고 난 다음에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에서 여자가 게으름을 피울지라도, 그게 단 하루일망정, 그걸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우르술라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 미녀 레메니우스를 교육시키려 애쓰면서 속으로는 스스로를 속이곤 했었다.

 

ㆍ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그 많은 슬픔과 고통을 치르게 하시는데, 혹시 인간이 쇳덩이로 만들어졌다고 믿고 계시는 거냐고 주저없이 하느님에겐 묻곤 했다. 

 

ㆍ남자들이란 일단 식욕을 채우고 나면 조금 전의 배고픔을 부인하는 성질이 있다. 

 

자신이 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곧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이 될 것 같아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백내장의 후유증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라도 기존의 기억을 이용해 계속해서 물건들을 볼 수 있도록 물건들 사이의 거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아내는 공부를 조용히 집요하게 했었다. 나중에는 예기치 않게 냄새들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어둠 속에서는 부피나 색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힘으로 구분되었고, 그녀를 체념으로 인한 수치심으로부터 결정적으로 구원해 주었다. 그녀는 방 안의 어둠 속에서도 바늘에 실을 꿰고, 옷에 단춧구멍을 낼 수 있었고, 우유가 언제 끓을 것인지도 알아냈다. 각각의 물건들이 있는 장소를 어찌나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지 때때로는 자기가 장님이라는 사실을 그녀 자신도 잊곤 했다. 69

한번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페르난다가 집 안을 온통 뒤집어놓았었는데, 우르술라가 아이들의 침실 까치발에서 찾아냈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많고 사방을 돌아다니는 동안에 우르술라는 단순히 그들이 갑자기 자기와 절대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네 가지 감각을 동원해 그들을 감시하곤 했는데, 마침내 집안 식구들이 각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날마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다니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같은 시각에 거의 같은 발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이 매일매일의 자잘한 습관에서 벗어날 때만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래서 페르난다가 반지를 잃어버리고는 낙담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르술라는 그날 페르난다가 했던 행동 가운데 다른 날과 달랐던 점은 전날 밤에 메메가 빈대 한 마리를 발견해 페르난다가 아이들 침대 매트리스들을 햇볕에 내다 말린 것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매트리스 청소를 할 때 아이들도 도왔기 때문에 우르술라는 페르난다가 반지를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유일한 장소인 침실 까치발에 빼두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에 페르난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는 일이란 일상의 습관 때문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기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길들에서만 반지를 찾아했는데, 그래서 흔히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데는 그토록 힘이 드는 법이다. 

 

사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신이 했던 말은 그가 현실을 파악하고 표현하기 위한 기재로 차용한 마술적 사실주의와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마술사처럼 하는 것, 즉 현실을 무한히 확대하고, 현실을 재해석하려는 그의 시도는 백년의 고독에서 충분히 탐지되는데, 이 허구적 세계는 마치 창조주가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술에 의해, 마술 속에서, 마술로부터 생성되고 파괴되고 있다. 

어찌 보면 백년의 고독 속의 인물들은 고독과 사랑에 관해 무능함으로써 고독이라는 순환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의 운명, 다시 말하면 라틴아메리카의 조건을 가장 잘 정의하는 고독이라는 개념은 사랑에 무능한 사람들의 와 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그 경비원은 최근 몇달 동안 거의 매일 밤 그랬듯이 발가벗은 몸으로 전갈과 나비들 사이에서 사랑의 갈증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던 메메가 기다리고 있는 목욕탕으로 들어가려고 기왓장들을 들어내던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를 쓰러뜨렸다. 그의 척추에 박힌 총알 한 방은 그를 평생 동안 침대에 가둬버렸다. 그는 자기를 한순간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노랑 나비들과 추억이 시달리고, 암탉 도둑으로 공식적으로 멸시를 받은 채, 신음 소리 하나 없이 불평 한마디 없이 변명 한마디 해보지 않고, 고독 속에서 늙어 죽었다.

 

진정하세요. 남자 하나 때문에 여자 하나가 미치는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요.

 

 

 

 

 

마꼰도와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 대한 탐구

 

1. <소설의 죽음>에 반기를 둔 <백년의 고독>

소설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동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2. 마술적 사실주의: 또다른 리얼리즘의 극치

 

3. 유토피아적 공간: 나선형적 시간

 

4. 고독, 섹스, 근친 상간: 마꼰도와 부엔디아 가문의 인간 조건

 

5. <백년의 고독>: 삶과 문학에 대한 진정한 화두

 

 

 

 

728x90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경이코노미 2141  (0) 2022.01.07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0) 2022.01.05
위대한 왕 길가메시 / 루드밀라 제만  (0) 2022.01.05
미들마치 / 조지 엘리엇  (0) 2022.01.04
코코 사넬 / 론다 개어릭  (0)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