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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의 시간 속으로 / 윌리엄 글래슬리

by mubnoos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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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ㆍ암석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ㆍ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과학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기본적인 과정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모든 지질학 연구는 판구조론을 바탕으로 한다. 판구조론은 지구를 역동적인 행성으로 규정한다. 지구 내부 깊숙한 곳의 열이 해양 지각과 대륙 지각을 이루는 12개의 판을 느리게 이동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판이 충돌하는 곳에는 산맥이 형성되고 판이 분리되는 곳에는 지각이 생긴다. 지속적인 지각의 생성과 파괴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독자적인 시스템의 요건을 충족시킨다. 이 같은 과정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증거는 9억 년 전의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된 경우는 증거가 불분명하다. 

 

한때 야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인간이 방랑하던 시절이다. 수많은 언어에서 야생을 의미하는 단어가 딱히 없다. 야생은 존재 자체로, 야생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방랑하지 않는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야생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야생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대한 쓰나미처럼 지구 표면을 휩쓸고 다니면서 이 세상을 점점 더 많은 존재로 채우고 자연의 깊숙한 곳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시키고 있다.

 

 


들어가기 전에

ㆍ그린란드는 지구에서 가장 광활하고 끝없이 펼쳐진 야생 중 하나로, 국토의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여 있다. 얼음으로 덮여 있지 않은 곳은 장소로서가 아니라 경험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실제로 존재하든 상상으로만 존재하든, 이름이 있든 없든, 이곳에서의 모든 경계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 야생이 지닌 날것의 순수함 앞에서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ㆍ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책임을 의미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인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야생에게 웅대한 힘이 있다면, 그것은 진화의 무심함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모순처럼 보이는 사실들을 전달하는 능력이라 하겠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 변화에 저항해 야생이 스스로 어떠한 복원을 해나가는지 보라. 

 

ㆍ야생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한다. 우리가 야생으로 들어가면서 가져간 모든 신념이나 상상은 우리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지지만, 우리는 그 질문을 쉽게 간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ㆍ자연을, 야생을 잃을 경우 개인적으로든 인간이라는 개체로서든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상 1

 

ㆍ아름다움 자체는 무한한 것을 담은 감각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

 

ㆍ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표면뿐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은 반사된 빛에서 나온다. 이는 현재로 흘러 들어와 한순간 형태가 되는 사건들의 결과물이다. 삶은 우리에게 그 인상에서 질감과 형태, 무게와 온기를 이끌어내라고 가르친다. 

 

ㆍ질문에 대한 답은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지며 그 안에 담긴 복잡한 미스테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을 이루는 구성요소에 대해 나름의 지식체계를 갖춰나간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개인적인 삶의 맥락을 이루는 유일무이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구조에 의미를 부여한다. 

 

제1장 분별

갑자기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계질서 따위는 없었고 모든 것은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을 뿐이었다. 가치는 희소성이나 차이를 향한 욕망에 좌우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자갈투성이 해변을 걷는 동안에는 첨벙거리는 파도 소리나 내 부츠가 내는 뽀도독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토록 원하던 곳에 와 있었다. 야생의 고독 속을 홀로 걷는 시간이었다. 태양빛, 파란 바다, 패턴을 이룬 암석 곳곳에 고독이 스며 있었다.

 

위대한 외로움 속에서도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내 주위의 풍경은 새로움과 조화로 굉장히 아름다웠다. 색상, 질감, 형태, 패턴이 한 표현에서 다른 표현으로 막힘 없이 흘러갔다. 중대한 개념(바위, 물, 공기, 추위)들을 제외하고 익숙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이해를 거부했다

 

ㆍ야생은 존재만으로도 새롭다. 




 

인상 2

 

ㆍ땅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일관적이고 초월적인 의미를 지니며 인간의 사려를 깊게 하는 힘이다. 

 

ㆍ우리는 물이 결정을 이루는 격자 속에서 스스로를 밀어넣은 결과이자,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위해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성분들과 나눈 구변 좋은 담론의 결과물이다. 물은 통합과 결합을 촉구한다. 원소는 분자가 되고 분자는 그 순간에 허락된 가장 복잡한 화합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은 붕괴와 분해 반응의 촉매이기도 하다. 물은 암석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분해하기도 한다. 

 

ㆍ우리는 끊임없는 재구성의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우리가 품고 있는 환상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생명 작용의 결과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결국 결핍된 진실이다. 순수한 자연에서 우리는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선입관과 오해를 마주하게 된다. 

 

 

제2장 고화

나는 야생에서 펼쳐지는 생사의 보편성에 경탄하고 있었다. 툰드라 표면에는 새의 뼈와 북극여우의 두개골, 순록의 뿔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진화론적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 증거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새하얀 땅 위를 어두운 음영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미래는 계속해서 뼈의 표면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우리가 계획하고 구축한 세상에서는 우리가 실제로 어떠한 세상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난 수십억 년에 걸쳐 펼쳐진 변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무엇인지, 무엇의 일부인지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형태가 완성되지 않은 야생의 세계를 알아야 한다. 그곳은 뼈가 놓여 있는 세상이다.

 

이 땅은 우리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중 극히 일부분에 거주하며 그 일부만 경험할 뿐이다. 우리는 기껏해야 2.5미터 높이와 몇 미터 너비보다 적은 공간에 딱 들어맞도록 진화했다. 우리는 그 일은 잘해낸다. 하지만 툰드라 식물과 흠뻑 젖은 토양의 뒤엉킴 속에 존재하는 세상에는 애초에 접근할 수 없다. 조차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형태에도, 매가 날아다니는 혼돈 가득한 해류에도.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우리는 빈곤해지고 무지해진다. 




인상 3


제3장 등장

디젤 연료로 구동되는 콘크리트 기계는 우리가 문명세계로 돌아왔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내가 툰드라에 남겼던 발자국은 마치 무(無)를 규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우정, 조류, 바람, 구름층에 주의를 기울였던 존재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새로운 세상은 진화하는 풍경이나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과는 거리가 있다. 이곳에는 국경과 경계가 있다. 활주로의 단단함마저 기이하게 보였다. 지구를 느낄 수 있는 천 가지 방법을 제공하고 있는 불규칙적인 대지의 감촉이 의도적으로 삭제되고 있다.

 

ㆍ야생에서의 삶은 가혹하고 생존은 투쟁이다. 

 

ㆍ야생이 적막한 것은 소리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에는 온갖 소리가 넘쳐나지만 우리에게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이 광활한 장소에는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동적이든 정적이든, 인간은 이루어낼 수 없는 일들이 달그락댄다. 

 

ㆍ과학의 목적은 발굴이다. 




인상 4

ㆍ이 경이로움의 의미를 정의내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라고. 그렇게 했을 때,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계속해서 울림을 전할 것이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여주는 것, 그 너머를 이해할 것이고 상징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더 이상 충족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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