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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by mubnoos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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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자살'은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음'이다. '자살'이란 희생자 자신이 결과에 참여하는 모든 경우의 죽음을 말한다. 자신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죽음에 참여했다면 자살이다. 자기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어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자살을 의미한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삶은 소중한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며, 삶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의미들이다. 그들은 의미없는 우주에 의미을 부여하기도 하며,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존재들이다.

 

 

 

명절은 '가족들'과 '그 가족들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지점이다. 동시에 우리는 그 연결망 속에서 어떠한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책임에 따라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이나 출산 그리고 육아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듯이 그 연결된 책임들은 변화한다. 하지만 적어도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책임과 선택들은 변화하지 않는 듯 보인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연결망 속에서 불편한 지점들 중 하나는, 치매가 걸리시거나, 몸이 거동이 불편한 가족에 대한 선택의 지점들이다. 모셔야 하는가? 요양병원에 가야하는가? 영양공급을 위해 주사를 맞을 것인가? 코에 장치를 연결할 것인가? 상속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가족구성원들이 책임을 동등하게 분배하였는가?

 

 

 

대부분의 '노인'은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 '늙으면 죽어야지', '오래 살아서 무엇하랴'라는 말들은 흔히 듣을 수 있는 말들이다. 죽음은 먼저 경험해볼 수 없는 것이기에, 타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수월하지도, 전혀 유연하지도 않다. 삶은 언제나 누구나에게 부여된 불가침의 가치이며, 그 존재 자체는 항상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살아있음은 죽지 않는다는 선택의 연속일까? 그 순간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나약하거나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한 것일까? 죽음을 선택할 수 없어서 시간이 죽음을 가져올 때까지 오로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더라도 죽음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우리는 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개인에게 주어진 삶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의 선택 또한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항상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죽음 또한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삶과 죽음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살아 있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선택의 연속인가?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야 하는가? 늙어서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죽음을 선택할 수 없음은 어딘가 불편하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과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여성 최초의 글라이드 조종사는 말했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서는 인생을 발견할 수 없다'. 예전에 한 달 정도 밖에 나가지 않고 우울증 비슷하게 집에만 쳐 밖혀 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기분이었던 거 같다. 아마 그즈음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였던 거 같다. 삶은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도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해 나아가는 과정아닐까.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삶은 어쩌면 죽음보다 더 잔인한 구석이 있다.

 

 

 

뒤르케임은 자살은 사회적 책임이며 따라서 모든 자살은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인연이 없는 '무연사회'와 '무연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죽음이 생겨하는 이유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함이 아닐까? 외로운 삶과 외로운 죽음보다도 짐이 되는 삶과 죽음은 더 견디기 어려운 종류의 일인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한니발 장군은 벨트에 항상 치사량의 마약을 소지하고 다녔다고 한다. 현명하고 실용적인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죽음은 내가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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