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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언어 / 데얀 수직

by mubnoos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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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것들의 비밀 우리는 왜 어떻게 매혹되는가?

 

 

 

 

프롤로그: 물건들 속에서 허우적대는 세상

ㆍ우리에게 물건들은 장난감이다. 그것들을 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박감에 대한 위안이자, 그것들을 손에 넣고자 하는 우리를 유아로 퇴행시키는 장난감.

 

ㆍ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물건들이 멈추지 않는 홍수처럼 끊임없이 제공되는 여물통에 다가갈 기회를 얻으려 기를 쓰고 분투한다. 

 

ㆍ선글라스와 만년필, 구두와 자전거.....그러니까 거래하고 수집하고 범주를 구분해서 조직적으로 정리하며 궁극적으로는 소유하고 차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페티시의 대상으로 삼고서, 혼미한 정신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포르노그래피를 계속 돌리는 것은 바로 모델 번호와 기원과 내력 같은 복잡하고 미묘한 요소들이다. 

 

ㆍ물건들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일상적 삶의 실제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1. 언어 Language

ㆍ언어는 인간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다. 

 

ㆍ소비는 격식도 멋도 없이 최소한의 필수적인 요소만 남은 가장 기본적인 거래다. 

 

ㆍ디자인을 중시하는 제조업체들은 오랫동안 진지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검은색을 써왔다. 하지만 애플에게 검정은 새로운 색깔이었다. 색이 아닌 검정은 멋이 아니라 정밀함으로 소비자에게 호소하는 과학적인 도구들에 사용된다. 아무 색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짝이 장식으로 현혹시키지 않을 만큼 미래의 구매자들을 진지하게 대하여 존중하겠다는 의미다. 사실 가장 효과적인 유혹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검은색도 공허한 신호, 실체가 결여된 신호가 되어버린다. 

 

ㆍ일관성이란 게 도대체 뭐길래, 논리와 철저함과 계산의 위엄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이 만든 물건들도 어느 수준에선가 통일성을 반영하거나 흉내내기를 기대하고,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으면 실망한다. 

 

ㆍ우리의 소유물에 시간의 흐름이 반영된다는 것은 조금도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보낸 삶의 흔적들이 물건에 권위를 더해주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ㆍ쓸모없는 물건들 중 소수만이 수집이라는 묘한 생태계의 일부로 경제순환에 다시 진입한다. 그러나 수집은 그 자체로 아주 특별한 종류의 페티시이며, 시간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시도로 이해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또 필멸성의 위협에 저항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잠시라도 일련의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은, 질서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 일말의 질서를 부여한 듯한 느낌을 준다. 

 

ㆍ우리는 물건들을 수단으로 우리 삶의 경과를 측정한다. 물건들을 사용해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떤 존재가 아닌지 표현하다. 

 

ㆍ디자인은 물건들의 형태를 만들고, 그 물건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만드는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가장 세련된 디자이너의 역할은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스토리텔러가 되어서 디자인이 그러한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ㆍ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상당히 여러가지 물건들이 한 가지 물건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ㆍ디자인의 본질에 관한 논쟁이 스타일과 본질로 양극화되어서는 안 된다. 사물의 표면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표면 아래 무엇이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ㆍ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관한 여러 겹의 정의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ㆍ인쇄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아마도 그만큼 자명하지는 않을 또 다른 사실은, 의사소통이 단순히 개개의 글자들이 만들어낸 단어의 형식적 의미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글자들 자체가 어떻게 조직되고 구체화되고 디자인되었는지도 또 다른 수준의 정보를 제공한다. 

 

ㆍ디자인에는 우리의 경제체제도 반영되어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이 남긴 자국도 보인다. 그것은 일종의 언어이자,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들의 반영이다. 

 

ㆍ디자인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로 흥미진진한 것은, 물건들에는 기능과 용도라는 뻔한 주제 말고도 이해해볼 뭔가가 담겨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건들이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 못지않게, 그 물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하면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ㆍ디자인은 한 사회가 그 목적과 가치를 반영하는 물건들을 창조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다. 

 

ㆍ디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를테면 '왜' 그런지도 중요하다. '어떻게'를 고민하는 것도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똑같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ㆍ좋은 디자인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쁨이기도 하다. 

 

ㆍ디자인이라는 언어는 여느 다른 언어들만큼 급속하게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것은 미묘하고, 지혜롭게도, 서투르고 진부하게도 다루어질 수 있다. 어쨌든 그것은 인간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다. 

 

 

 

 


2. 원형 Archetypes

ㆍ공책을 사용하는 데는 사용 안내서가 필요 없다. 

 

ㆍ조정 가능한 조명 스탠드는 기술과 창의성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만들어낸다면 기술적인 성취와 더불어 예술적인 야심까지도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작업에 적용할 수 있는 변수들도 아주 다양하다. - 분위기의 문제다. 

 

ㆍ물건이란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받는 복잡한 안무의 한 부분이다. 

 

ㆍ우리가 화면들과 디지털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우리가 물리적 세상과 맺는 관계를 다룰 때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특징들이 환기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ㆍ원형을 만들어내는 핵심은 단순히 어떤 외양이냐가 아니다. 원형으로서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물건의 기능이 무엇이며, 사용자가 그것을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어떤 제품에 방대한 사용 설명서가 따라온다면 그 물건은 결코 원형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해도 좋다. 

 

ㆍ가정용 물건에 사용된 검정은 그 물건이 매력적인 면보다는 진지한 도구로 자신을 내세운다는 분명한 신호다. 그 공격적인 검정의 미학에서 노골적인 남성성을 부여받았다. 

 

ㆍ눈에 잘 띄는 빨간 동그라미를 표시한 것도 미심쩍음이나 불확실함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다. 

 

ㆍ지폐는 그림과 폰트읜 선택만으로 중앙은행의 정직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인쇄된 종이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에게 확신시킬 수있어야 한다. 지폐를 디자인하는 일에는 복잡한 마술을 부리는 일도 수반된다. 한편으로는 국가적 정체성을 일깨우려고 시도한다. 또 정확성과 제작의 품질처럼 가치를 나타내는 다른 신호들에도 의존한다. 이런 신호들은 위조 방지를 위한 복잡한 기능적 장치들로 녹아난다. 

 

ㆍ가치 있는 종이임을 표현하는 데는 여전히 수채화보다는 강판 인화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ㆍ녹색은 당연히 돈의 색깔이다. 

 

ㆍ디자인은 끊임없이 원형들을 창조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물건들의 범주를 만들어낸다. 

 

ㆍ일단 하나의 원형이 만들어지면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기억으로 계속 남아 있어서 언제나 다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고, 때로는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재사용할 수 있게 된다. 

 

ㆍ사람이나 동물의 특징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제품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주제다. 

 

ㆍ애플은 최초의 아이북을 어린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구상했다. 

 

ㆍ장난감들은 귀여워 보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어느 정도는 놀이 같은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ㆍ가장 성공적인 디자인이란 모든 특질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자각적으로 이해하면서 그 모두를 동시에 활용하는 디자인이다. 

 

 

 

 

 


3. 호사 Luxury

ㆍ베토벤의 교향곡은 실크와 벨벳과 레이스를 두르고 돌아다닌 사람이라면 결코 쓰지 못할 작품이다. 

 

ㆍ'호사 luxury란 안정감이다.' - 렘 콜하스

 

ㆍ호사는 인류가 나날의 생존 투쟁에서 자신을 위해 찾아낸 한숨 돌릴 수 있는 유예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사려 깊고 세심하게 만든 물질적 사물들의 질을 이해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었다. 어떤 물건이 디자이너나 만든 사람에게 주었던 기쁨을 우리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물건이 지닌 본성의 한 측면이기도 하고 촉감뿐 아니라 지성의 반영이기도 하다. 

 

ㆍ희소성은 가장 단순한 것마저 호사로 만들 수 있다. 풍요의 시대에는 제대로 된 호사를 누리기가 더 어렵다. 

 

ㆍ과시적 호사. 엄격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그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그런 것들을 만들지 않고 사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존을 기대고 있는 경제가 타격을 입을 테고,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ㆍ호사가 살아남으려면,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전통이 결코 같은 상태로 유지되지 않고 계속해서 쇄신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ㆍ아름다움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이 얼마나 비싼가에 중요하게 좌우된다. 과시적 낭비성이라는 요건은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보통 우리 취향의 표준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강제력 있는 기준으로서 분명히 존재하며, 아름다운 것에 관한 우리의 감각을 선별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하며,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타당하게 인정될 수 있는 것과 인정될 수 없는 것에 관한 우리의 분별력에도 지침이 되어 준다. 

 

ㆍ아름다운 것들과의 교류가 우리 자신도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ㆍ문화의 진화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에서 장식을 제거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우리는 이제 장식에서 벗어날 만큼 성숙한 것이다. 

 

ㆍ직관에는 어긋나지만, 사실은 단순한 것이 더 비싸다. 정교하거나 지나치게 복잡한 것보다도 단순함을 만들어낸 것이 거의 언제나 더 비용이 많이 들거나 더 어려운 일이었다. 

 

ㆍ포장은 한 물건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서 피할 수 없는 전주곡이다. 

 

ㆍ우리 시대의 호사에서는, 점점 더 소비자들에게 돈을 쓰도록 설득하는 디테일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ㆍ호사란 위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소유물들의 가차 없는 유입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4. 패션 Fashion

ㆍ패션이라는 괴물은 미술과 건축에 그 발톱을 꽂은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디자인 전체를 한모금 깊이 들이켜 꿀꺽 삼켜버렸다. 

 

ㆍ패션쇼장은 특별한 종류의 공적인 삶이 영위되는 장소다. 

 

ㆍ원래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던 패션쇼가 이제는 목적 그 자체가 되었다. 

 

ㆍ패션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사업체를 건설한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새롭고 젊은 관객들을 끌어들이면서도 더 나이든 고객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수완을 터득해야만 한다. 그것은 미묘한 균형 잡기의 묘기다. 우선 그들은 자신들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특징을 충분히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초창기의 고객들과 함께 늙어가는 걸 피하려면 새롭고 다른 것을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제대로 해내기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롭게 수정하는 것에서 아예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옮겨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ㆍ패션이 공예에서 산업으로 진화하면서 의류와 향수, 가방과 시계, 그리고 이제는 가구까지 포괄하는 호사 상품들의 대규모 복합 기업의 성장을 부추겼다. 이러한 과정은 창조력의 투입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만들어낸다. 패션은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자신들의 특징을 새길 신선한 방안들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ㆍ가장 명시적으로 반복되는 단 하나의 주제를 꼽으라면 바로 섹스다.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브랜드들은 언제든 광고에 1970년대의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시키는, 공들여 뽑아낸 디테일들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 

 

ㆍ패션은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패션이 예술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시기는 단 한번도 없었다. 

 

ㆍ패션은 현대의 삶에 달린 모든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패션은 고급문화와 대중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상징하며, 패션에게 진짜 힘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것은 진지한 문제들도 다룰 수 있지만, 협소한 의미의 디자인이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방식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왔다.

 

ㆍ카무플라주는 표면적으로 모든 국가의 군대가 은닉을 목적으로 채택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사실상 구별하기 위한 무늬로 바뀌었다. 

 

ㆍ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한 방식이다. 패션도 그렇다. 

 

ㆍ패션은 옷들로 이루어진 우주에 의해, 그리고 거기에 함축된 변화의 현상들에 의해 정의된다. 그것은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 그리고 그 옷들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관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주변 세계에서 변동을 예상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된다. 

 

 

 

 


5. 예술 Art

ㆍ예술이 언어를 창조하면 디자인은 그 언어에 반응한다. 디자인 역시 예술가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시각적 언어를 창조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한 예술가의 작업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바로 질문을 던지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이다. 

 

ㆍ유용성은 지위와 반비례한다. 어떤 물건이 쓸모없을수록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고급스러운 유용성이란 쓰지도 않는 기능들을 과시하듯이 사치스럽고 복잡하게 장식해두고 그 정확성마저 일종의 장식이나 보석 같은 것이 되어버리는 다이버나 우주비행사나 레이싱 선수가 사용하도록 디자인된 손목시계나, 복잡한 특수 기능들이 과하게 많은 SUV같은 물건에 한정된다. 

 

ㆍ디자인된 물건들의 범주는 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 물건들의 범주에 의해, 바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이유로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ㆍ예술과 디자인의 간극이란 흔히 논의되는 만큼 첨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디자인은 언제나 직접적인 유용성을 넘어선 무언에 관한 것이었다. 

 

ㆍ디자인에 적용된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발상 중 하나는 대량생산된 물건들 각각은 나머지 것들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ㆍ유용한 물건들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가장 가치가 높다. 

 

 

 

 



에필로그: 나는 여전히 디자인에 매혹된다

 

ㆍ가장 흥미로운 일은 물건들의 모양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디자인의 비물질적인 다양성을 다루는 일에서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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