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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의 세계들

by mubnoos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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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벌초했다. 예초기의 프로펠러로 잡초들을 제거하면서 문뜩 든 생각은, 인간이 만든 것들을 제외하고는 자연에는 완벽한 직선이나 원형 같은 것은 없다는 점이다. 완벽한 기하학의 세상은 모두 인간들이 상상한 예술적 혹은 과학적 상상의 결과물이다. '예초기'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잡초'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이다. 이 차이점은 벌초작업을 더 힘들게 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두 덩어리로 되어 있다. 하나는 인간이 만든 세상(문명), 다른 하나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세상(자연)이다. 플라톤은 세상을 두 덩어리로 나눈 점에 있어서는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역시 완벽한 원형 혹은 '구'가 아니다. '구' 모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완벽한 '구'가 아니다. 사실은 완벽한 '구' 모양이 아니라 적도 부분이 부풀어 오른 타원에 가까운 모습이다. 예술과 과학에서 동일하게 다루는 기하학의 세계, 즉 직선과 삼각형, 사각형, 원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관념 안에 있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만들어 낸 변화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무렵 문과, 이과 중 양자택일한다. 인간이 만든 세상(문명)을 공부하려면 문과를, 인간이 만들지 않은 세계(자연)을 공부하려면 이과를 가야한다. (선택의 기준은 수학실력이라고 생각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이후에도 대부분 선택을 할 때에도, 두 가지 세상을 함께 고려하지 않고, 하나를 선택하는 습관은 잔여한다. 그래서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거나, 온전한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그런 세상''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다른 누군가는 '만들어진 변화'를 수용한다.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만들어진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세상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무엇인가 변화를 만들어내기 전, 그 '변화'는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해석되지 않은 것이다, 만져지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해석되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과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삶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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