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 그러므로 여러 가지를 이용해서 되도록 즐기는 일은 현자에게 어울린다. 분명, 맛있는 음식이나 음료를 적당히 먹고 마시는 것, 푸른 식물의 상쾌한 아름다움, 장식, 음악, 운동경기, 연극, 그 밖에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이런 것들로 스스로를 상쾌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현자에 어울리는 것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 인류가 지향한 풍요로움이 달성되면 인간은 거꾸로 불행해진다.
• 훌륭한 일을 해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행복하다. 반대로 그렇다 할 만한 훌륭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은 사람들, 즉 몰두할 만한 일이 없는 사람들은 불행할지도 모른다.
• 버트런드 러셀이 주장하듯, 전념해야 할 만한 일이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는 인간이 불행하다고 말한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셈이 된다. 역시 이 지점에서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여유의 두 종류 : 금전 & 시간
• 좋아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 취미는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과 재미를 느끼는가 하는 그 사람이 지닌 감각의 존재 양태를 의미한다.
• 현대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 좋아하는 것이 소비자가 자유롭게 결정한 욕망에 따른다고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란 생산자가 자신의 편의에 의해 광고나 그 밖의 수단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인간은 이미 선험적으로 갖고 있던 어떤 틀(개념)에 맞추어 세계를 이해한다. - 칸트
• 좋아하는 일이란 전부터 바라고 있으면서도 아직 이루지 못한 어떤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 왜 한가함은 착취되는 것일까? 인간이 지루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가함을 얻었지만, 한가함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모른다. 그 상태로 한가함 속에서 지루해지고 만다. 그러므로 제공된 즐거움, 준비되고 마련된 쾌락에 몸을 맡기고 안도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왜 인간은 한가함 속에서 지루해하는 것일까? 도대체 지루함이란 무엇일까?
• 살아 있다는 감각의 결여, 살아있다는 의미의 부재, 무엇을 해도 좋지만 무엇도 할 일이 없다는 상실감, 이런 생각 속에서 살아갈 때 사람은 열중할 것, 몰두할 대상을 갈망한다. 대의를 위해 죽는 삶이란 이러한 소망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1장 토끼 사냥을 하러 가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원리론
• 원리란 모든 논리의 출발점이 되는 생각을 가리킨다.
• 인간의 불행은 누구라도 방에 꼼짝 않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저 방에서 가만히 있기면 좋으련만, 당최 그러지를 못한다. 그래서 굳이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
• 지루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기분 전환을 찾는 것뿐인데도,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굳게 믿어 버린다.
• 기분전환은 열중할 수 있어야 하고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 왜 열중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할까? 열중할 수 없다면 어떤 사실에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다. 기분 전환의 대상을 손에 넣는다면 자신이 정말로 행복해진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행복해지지는 않아.
• 괴로운 것은 물론 힘겹다. 그러나 자신을 어떤 행위로 몰아넣는 동기가 없다는 사실은 더욱 괴로운 법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른다는 지루함의 괴로움,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서라면 외부에서 주는 부담과 괴로움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이유를 부여받기 위해서라면 사람은 기꺼이 괴로움을 택한다.
• 지루함의 반대는 쾌락이 아니다.
• 지루함이란 무엇인가?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좌절된 상황이다. 사건은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같은 일이 반복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참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주는 일을 추구한다. 만약 오늘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이 된다. 즉, 사건이 일어나면 똑같은 나날의 반복이 단절된다. 그러므로 사건을 바란다. 그러나 사건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지루해진다. 사건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좌절된 상황이라는 지루함의 정의가 의미하는 상태가 된다.
• 지루함 마음이 추구하는 것은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주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사건은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주기만 하면 된다. 즉 사건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말이 된다. 불행한 사건이라도 좋다. 비참한 사건이어도 상관없다.
• 지루함의 반대는 쾌락이 아니라 흥분이다. 지루해할 때 인간은 즐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루함의 반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틀린 말이다. 지루해하는 인간이 찾는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흥분할 수 있는 대상이다. 훙분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 그렇기에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주는 사건의 내용은 불행이어도 상관없다. 지루한 사람은 즐거움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자신을 흥분시켜줄 사건이다.
• 인간은 지루함으로 괴로울 바에야 오히려 괴로움을 추구한다.
• 인간은 지루함으로 흥분을 추구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란 즐거움, 쾌락을 이미 얻은 것이 아니라, 즐거움,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즐거움, 쾌락, 마음 편함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이를 진심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점이 중요하다.
• 행복의 비결은 이런 것이다. 흥미를 가능한 한 확장시켜라. 그리고 흥미를 끄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반응을 적의가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우호적인 것으로 만들어라.
2장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졌는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계보학
• 식량 생산은 정착생호라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 1만 년에 걸친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이라는 과제
• 거주한다는 것은 본래적인 결핍을 지니고 있다. - 하이데거
3장 왜 ‘한가한 사람’이 존경받을까?: 한가함과 지루함의 경제사
• 한가함: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할 필요가 없는 시간, 한가함이란 사람의 자세라든지 그 감정을 느끼는 방식과는 관계가 없다. 즉, 한가함은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된 상태다.
• 지루함; 무언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감정이나 기분, 그 사람의 자세나 느끼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즉,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탣다.
• 레저산업은 사람들의 요구나 욕망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 그 자체를 만들어낸다.
4장 사치란 무엇인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소외론
• 사치는 불필요한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필요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과연 비난 받아야 할까? 인간은 필요한 것이 충분히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충분하다는 말은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 밖에 없다는 뜻도 된다. 충분이란 120%는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밖에 없는 상태는 사실 위험 부담이 몹시 크다. 어떤 사건으로 필요한 물자가 손실되면 즉시 필요한 수준보다 밑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불의의 사태를 해결함으로써 필사적으로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결국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즉,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 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인간은 풍료로움을 느낄 수 없다. 필요를 초월한 지출이 있어야만 비로소 인간은 풍요롭다고 느낀다. 따라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필요의 한계를 넘어서 지출이 이루어질 때, 인간은 사치스러움을 느낀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사치가 없어서는 안 된다.
• 낭비란 무엇인가? 낭비란 필요한 수준을 초월해서 물자를 취하고 받아들이는 것,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가 없는 것, 쓰고 남은 것이 낭비의 전제가 된다. 낭비를 필요를 넘어선 지출이기 때문에 사치의 조건이다. 그리고 사치는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 낭비는 만족을 가져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자를 취하거나 받아들일 때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 음식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꺼번에 많은 옷을 입을 수도 없다. 즉, 낭비는 한계에 도달한 후에는 멈춘다. 인간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낭비해왔다. 어떤 사회라도 풍요함을 추구하며 사치가 허용될 때는 그것을 향유한다. -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행위를 시작했다. 바로 소비다. 낭비는 어딘가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물자를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는 그렇지 않다. 소비는 멈추지 않는다. 소비에는 한계가 없다. 소비는 결코 만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소비의 대상은 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소비할 때 물자를 받아들이거나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물자에 부여된 개념과 의미를 소비한다. 소비되기 위해 물자는 기호가 되어야 한다. 기호가 되지 않으면 물자는 소비될 수 없다. 아무리 소비를 계속해도 만족을 얻지 못하지만, 소비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소비는 아주 길게 반복된다. 주구장창 반복되는 데도 만족이 없기 때문에 소비는 점차 과격하게 과잉으로 나아가며, 과잉될수록 만족의 결여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것이야말로 20세기에 등장한 소비사회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상태라 할 수 있다.
• 홉스는 평등을 무질서의 근거로 생각한다. 불평등하면 자연히 질서가 생겨난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따라야만 하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은 평등하며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희망의 평등이, 그리고 무질서가 생겨난다.
5장 도대체 지루함이란 무엇인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철학
• 지루함이 생길 때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시간이 꾸물거린다. 지루한 우리들은 이렇게 우물쭈물 흘러가는 시간 때문에 곤란해진다. 지루함의 머뭇거림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이유는, 머뭇거림이 단순히 머뭇거릴 뿐 아니라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루해하면서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에 붙잡혀 있는 셈이다. 붙잡힘이야말로 지루함을 구성하는 첫 번째 요소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며 꾸물거린다. 이렇게 느린 시간에 의해 우리든은 붙잡힌다. 이것이야말로 지루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그렣게 붙잡히면 아무것도 없는 곳, 공허한 상태로 내버려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 할 일이 없는 공허한 상태를 참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무언가 할 일을 찾는다. 공허함 속에 내던져지는 상태를 공허에 방치됨이라 부르려 한다. 이것이 바로 지루함을 구성하는 두 번째 요소다.
• ’아무튼 그냥 지루해‘라는 절대적인 거부에 의해 반대로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무튼 그냥 지루해라고 느끼는 우리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서 거부된다. 모든 것이 어떠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여러 가지 가능성이 거부되기 때문에 스스로가 가진 가능성으로 눈을 돌리게끔 만든다. 그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가능성이란 바로 자유다. 지루함이라는 기분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우리가 자유롭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렇게 바꿔 말해도 좋겠다. 지루하다. 자유롭기 때문에 지루하다. 지루하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이다.
•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인간은 무엇도 하지 않는 상태, 즉 허무한 상태에 방치된다. 무엇이든 할 일이 없는 상태는 인간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할 일을 찾는 것이다.
6장 도마뱀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발로라고 하이데거는 생각했다. 그 가능성이란 다름 아닌 자유를 말한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아니, 지루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유롭다.
• 모든 생물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을 살아가고 있다.
• 시간은 순간의 연쇄다. 인간의 순간은 1/18초, 약 0.056초 이다. 이는 모든 감각의 최소 시간 단위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1/18초가 감각의 한계다. 즉, 최소의 시간 단위인 1/18초라는 순간들이 이어져서 시간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의 시간이란 1/18초의 연속이다.
• 자유는 인간이 지닌 지루함의 근거다.
7장 결단하는 것이 인간임을 증명하는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 하이데거가 내린 지루함의 결론은 결단아있더ㅏ. 인간은 지루해한다. 그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자유라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단에 의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실현하라.
• 습관이란 힘든 과정을 거쳐 창조하여 얻은 것이다. 습관은 그렇게 역동적이다. 게다가 한번 습관을 획득헀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안주할 수는 없다. 습관은 종종 새롭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습관을 바꾸면서 잠시 평온을 얻는다.
• 새로운 환경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담력시험과 닮았다. 담력시험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은 암흑 속이어서 물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심신은 긴장하고, 주위도 잘 파악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어디에선가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에 집중하는 데 강렬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중대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실은 인간이란 생각하지 않고도 해결되는 상황을 목표로 삼아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생각만 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습관을 창조하고 환경세계를 획득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중에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 인간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강제된 것이다. - 들뢰즈
생각하지라는 기분이 고양되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격을 받아 생각한다.
• 인간은 될 수 있으면 생각하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찾으며 살아간다.
• 쾌락이란 무엇인가? 쾌락이라고 보통 상상하는 격한 흥분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생물은 흥분 상태를 불쾌함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일정한 상태에 두려 한다. 생물에게 쾌락이란 흥분량의 감소이며 불쾌함이란 흥분량의 증대라 할 수 있다. 즉 생물은 일정한 상태에 머무는 것을 쾌락으로 받아들인다.
• 인간은 습관을 만들어낼 것을 강요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습관을 만들어내면 그 와중에 지루해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