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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by mubnoos 2021. 1. 28.

제1장

국가란 무엇인가1-합법적 폭력

 

홉스의 국가론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이다.24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국가를 창조하는 것 뿐이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와 같이 경쟁하는 자연상태의 불안하고 고독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공동의 권력을 세우는 것이다.26

 

홉스에게는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제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형태였다. 그의 논리는 명확하다. 국가를 탄생시킨 신약의 목적은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를 만든 유일한 목적이다. 다른 목적은 없다. 28

 

국가가 가진 힘의 원천이 물리적 폭력이며, 오로지 국가만이 폭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뛰어난 수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운동을 하다 투옥되기까지 했던 평화주의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조차도, 국가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물리력의 핵심이 경찰과 군대이며, 내부 반란이나 패전으로 무너지지 않는 한 국가의 힘은 절대적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인정했다.32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신민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사는 일은 피해야 한다.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여야 좋겠지만, 언제든 필요하면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를 갖추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 신의를 지키는 것이 불리할 때는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 된다. 군주는 미움을 받을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36

 

국가주의 국가론을 따르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사회질서유지와 국가안전보장이다. 다른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보하는 이들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찬성 한다. 42

 

 

제2장

국가란 무엇인가 2-공공재 공급자

 

로크는 시민들의 동의에 의거하고 법에 따르는 통치를 주창했다. 스미스는 사회의 부를 증진한다는 목표 아래 국가가 시행한 자의적 간섭과 특권의 철폐를 제안했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으로 내세웠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선을 행하려 하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주의 국가론의 핵심이다. 48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는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정당성을 잃은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수립하려는 적극적 목표를 추구한 이론이었던 것과 달리, 자유주의 국가론은 처음부터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었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주의 국가론과 대립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안티테제였던 것이다… 로크의 시민정부론은 홉스의 리바이어던보다 약 40년 늦게 나왔

다. 51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킨다. 53

 

스미스가 인정한 국가의 의무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 단 한 가지뿐이다. 국가는 세속의 신이 아니라 공공재 공급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국가가 공공선을 진작한다는 명분으로 가하고 있던 강제와 규제,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공공선을 이루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55

 

‘국부론’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처지에 연민을 표하면서, 분업의 발전이 노동자들을 빈곤에서 건져낼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그러나 그가 의지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사실상 파산한 지 오래이다. 경험적 파산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었다. 이론적 파산을 선고한 인물은 1994년 뒤늦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John Nash)였다.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가졌던 프린스턴 대학의 스물두 살 청년 내시는 1950년 짧은 박사학위논문을 썼다. 여기서 내시는 스미스가 말로 논증한 조화적 듄형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56 각주11 영화 뷰티풀 마인드 루소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빼앗을 경우 사회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해체 또는 혁명의 가능성을 사회계약론에 끌어들인 것이다. 57

 

폭군은 법률에 따라 정치를 하기 위해 법률을 위반하는 자이고, 전제군주는 스스로 법률 위에 서는 자이다. 폭군은 전제군주가 될 수 없어도, 전제군주는 언제나 폭군이 된다. 59

 

루소는 무엇보다도 불평등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헤친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썼다. 평생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만 살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을길을 산책하며 사색한 끝에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철학서를 남겼던 임마투엘 칸트가 “번개를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던 바로 그 책이다. 60

 

정당한 권력이 법률을 통해서 하는 경우에도 공동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고 제약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밀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

하다. 63

 

밀의 나이는 스물넷, 친구의 아내이며 두 자녀를 두었던 해리엇 테일러는 스물세 살이었다. 두 사람은 정신적 연인이자 학문의 동반자로 지내며 무려 21년을 기다

린 끝에, 해리엇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혼인했다. 그러나 겨우 7년 만에 해리엇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67

 

소로는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라는 글에서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사람 하나를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며, 감옥이야 말로 “매사추세츠 주가 자유분방하고 풀이 덜 죽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유일하고 가장 떳떳한 장소”라고 말했다. 69

 

제3장

국가란 무엇인가 3-계급지배의 도구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계급이 형성된 이래 국가의 본질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사회의 성격과 지배계급의 특성뿐이다.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부르주아지도 처음부터 지배계급이었던 것은 아니다. 77

 

국가는 만인에게 평화와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사회가 아니다. 국가권력도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한 힘일 뿐, 인민이 사회계약을 통해 세운 공동의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지배계급이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국가론은 ‘도구적 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77

 

국가는 계급지배의 착취도구에 불과함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이 옳다면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에게 없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78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토대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임금노동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이다. 국가는 이 생산관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형성된 법률적, 정치적 상부구조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주기적인 산업공황과 노동대중의 궁핍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80

 

마르크스의 저술에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배분되는 사회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배분되는 사회로”라는, 아무 소용없는 슬로건 말고는 사회주의 경제에 관한 말이 한마디도 없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심각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정치무용론과 정치적 냉소주의이다. 85

 

우리의 국가는 여전히 유산계급에 우호적이고 무산계급에 적대적이다. 루소의 표현을 빌리면 국가 자신이 아니라 정부가,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88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심지어는 물질적 욕망과 돈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 일반을 가리켜 신자유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이때 신자유주의는 마르크스의 표현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물신숭배(fetishism)를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돈을 신격화하느 사회를 말한다. 89

 

인간은 때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불가능한 꿈을 향해 달려간다.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에 대한 꿈은 언제든 사람을 다시 설레게 할 수 있다. 91

 

 

제4장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국가가 정의롭게 되려면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텔로스를 충실하게 실현해야 한다. 지배자는 지배하고, 전사는 싸우고, 노예는 일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부분은 전체를 위해 존재하지만 전체가 부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너를 위해 창조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은 무엇보다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를 호소력 있게 설명한다. 98

 

 

사실을 말하자면 국가는 선이나 정의, 덕을 실현할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 아니다. 국가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동의 권력이 없으면 누구도 보호받지 못한다. 나는 국가의 기원에 관한 홉스의 생각이 실제 역사에 부합한다고 생각 한다. 102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정치철학이 다루어야 할 올바른 질문이다. 106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107

 

 

제5장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애국심은 중요한 미덕으로 널리 인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국가 그 자체인가? 또는 국가가 체현하는 어떤 가치인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같은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이익인가? 그 어느 것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애국심은 사랑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115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광풍을 일으키던 그 시점에, 르낭은 민족 창출의 근본적인 요소가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은 기억의 공동체가 아니라 망각의 공동체라는 것이다…르낭은 민족국가를 형성한 통일과정은 항상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언제나 대규모 살상과 전쟁을 동반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31

 

르낭에게 민족이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되는 인간의 거대한 결속이었다. 그것은 함께 공동의 삶을 계속하기를 명백하게 표명하는 욕구로 요약될 수 있다. 개개인의 존재가 삶의 영속적인 확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한 민족의 존재는 매일매일의 인민투표라는 것이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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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히테와 르낭, 톨스토이는 애국심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해했다. 피히테에게는 ‘살아 있는 언어’가, 르낭에게는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톨스토이에게 민족애, 조국애 또는 애국심은 이성으로 근절해야 하는 유해하고 근거 없는 허위의 감정이었다. 135

 

 

제6장

혁명이냐 개량이냐

사회를 계획하고자 하는 가장 열광적인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획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조금도 인내하지 못하는 가장 위험한사람이 된다. 성자와 같은 일편단심의 이상주의자로부터 미치광이 광신자까지의 거리는 단지 한 발짝에 불과할 때가 많다. 140

 

만약 인민이 국가의 폭력에 복종하느니 차라리 대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폭력은 더 이상 지배를 보장하지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국가가 인민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폭력에 기댈 필요는 없는 것이다. 현대국가는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가 아니다. 부르주아지가 오로지 국가폭력의 힘만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한 것도 아니다. 144

 

혁명을 통해 새로 태어난 국가는 모두 구체제보다 더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이며 국내외에서 더 능동적인 힘을 발휘했따. 이것은 국가가 사회혁명을 거치면서 쇠락한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해졌음을 의미한다. 149

문제는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는 일은 경험과 지식의 제약 때문에 그 실제적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너무나 전폭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포퍼는 그런 야심만만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제적 지식이 인간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다.156

 

무제한의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여 약자의 자유를 강탈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이 만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범위만큼 국가는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자비심에 내맡겨져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시민이 물리적인 폭력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호하더라도 경제적 권력의 오용에서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157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이나 ‘다수의 지배’와 같은 모호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통치자에 대한 공적 통제를 허용하고,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며, 통치자의 의사에 반하는 개혁을 폭력행사 없이 피통치자들이 할 수 있게 하는 일련의 제도적 틀을 의미한다.폭력의 사용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개혁이 불가능한 폭군 치하에서만 정당하다. 160

 

포퍼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의 부족을 이유로 들어 사회혁명에 반대했다. 그런데 하이에크는 혁명의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회혁명의 열정을 광신으로 본 것이다. 167

 

개인주의는 온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기본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치의 척도는 각자의 정신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일반적 가치척도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상충할 때가 많은 단편적 가치척도뿐이다. 따라서 개인주의자는 모든 사람이 타인의 가치나 선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선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168

 

자유주의적 도덕법칙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이다. 물질적 상황이 선택을 강요하는 분야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자유’. 그리고 삶을 자신의 양심에 따라 꾸려간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이 토양 위에서만 도덕적 감성이 자라날 수 있다. 집단주의는 도덕을 파괴한다. 개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을 주된 약속으로 내거는 운동은, 그 운동을 태동시킨 이상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더덕에 반하는 효과를 낼 수 밖에 없다. 사회혁명은 결국 도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169

 

우리가 흔히 내세우는 공공의 이익이란 것도 허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수많은 개인의, 때로는 공존하고 때로는 대립하는 이익이 있을 뿐이다. 171

 

권력이 자의적이지 않도록 방지해 주는 것은 권력의 ‘원천’이 아니라 권력의 ‘제한’이다. 172

 

법의 지배가 효과적이려면 예외없이 적용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규칙의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까지 할 수도 있다. 만약 똑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면, 종종 규칙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불합리한 규칙이라도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면 나쁘지 않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주장이다. 173

분배의 정의라는 하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체주의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경제적 힘의 자유로운 작동이 일으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불만과 억압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173

 

그는 국가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자유라는 이념과 시장이라는 비인격적 힘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한 셈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던 것일까? 175

 

국가가 특정한 가치 또는 공동선을 내세워 자의적 개입을 하는 그 순간, 사회는 미끄러운 비탈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고 우려했다. 일단 그 비탈에 들어서면 바닥까지 미끄러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비탈 아래에는 전체주의가 있다. 그 어떤 아름다운 가치를 내세울지라도 결과는 같다. 하이에크는 인간보다 시장을 신뢰했다. 179

 

점진적 개혁의 길이 봉쇄된 곳에서만 사회혁명이 길을 연다. 카를 마르크스가 폭력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연서을 논증한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시대 유럽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 계급이 집단적 궁핍과 소외,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점진적 개혁의 길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181

 

 

제7장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모든 학문과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이다.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의 선은 정의다. 정의는 특정한 사물을 평등한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84

 

베블런에게 진보는 어떤 당위적 요구나 지향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와 삶의 방식, 사유습성의 실제적이고 불가피한 진화를 의미한다. 진보는 피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이다.187

 

진보주의는 생활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그에 따르는 제도의 조정 필요성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정신적 태도이다; 보수주의는 새로운 사유습성을 거부하고 변화에 저항하려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킨다. 보수주의의 핵심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188

 

문명의 모든 시대를 지배했던 계급에게 베블런은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는 듣기 좋은 이름을 선사했다. 유한계급은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생산적 노동이 창출한 것을 약탈하고 활용하는 계급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수주의의 몸통이다. 189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마르크스가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했던 국가가, 김상봉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부르주아 계급 자체가 아니라 그 최상층부인 재벌 기업 또는 재벌 가문의 이윤추구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도 노동자가 경영권을 가지면 기업경영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은 없다. 국가의 주권이 시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자를 노동자가 선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195

 

에드워드 카는 베블런과 달리 진보를 제도의 진화를 가리키는 실증적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진보는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을 의미한다.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인간 능력의 발전에 대한 믿음이다. 197

 

이남곡에 따르면 진보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것을 지향하는 것이 진보주의이다.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 매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불합리한 제도, 물질의 결핍, 낡은 생각이 그것이다. 198

 

개인이든 국가든 탁월하고 지혜롭지 않고는 훌륭한 행위를 할 수 없다. 용기, 정의, 지혜, 절제와 같은 탁월함은 국가든 개인이든 같은 효력과 성격을 지닌다. 국가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은 같은 것이다. 최선의 정체는 누구나 가장 훌륭하게 행동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훌륭한 입법자가 할 일은 국가나 민족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훌륭한 삶과 행복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203

 

복지국가는 조직화된 권력으로 시장법칩을 세 방향에서 수정하는 것이다. 첫째 개인 또는 가족에게 노동의 시장가치나 재산수준과 관계없이 최저소득을 보장하고, 둘째 질병과 노령, 실업 등 개인과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대한 불안을 감소시키며, 셋째 계급적 귀속이나 사회적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일정한 수준의 사회적 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이다. 209

 

 

제8장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개인으로서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봉사해야 할 것과 서로 간의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런데 인종적,경제적,국가적 집단으로서의 개인들은 스스로 그들의 힘이 명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 따라서 개인과 국가를 선으로 이끄는 도덕적 이상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21

 

니버는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큰 사회집단들인 공동체, 계급, 인종, 민족 등은 사람들에게 자기부정과 자기확대의 이중적인 기회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애국심은 저급한 충성심이나 지역적 충성심보다 고양된 형태의 이타주의이다. 하지만 절대적 전망에서 보면 애국심도 한갓 이기주의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은 스스로를 이기적으로 표현한다. 222

 

개인에게는 이타성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반면 국가에게는 정의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이다. 이것이 니버의 생각이다. 223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란 무엇인가? 플라톤은 건강하고 안정되고 통합되어 있는 국가가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었다. 223

 

플라톤은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뛰어난 미덕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이 공동선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최고의 공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24

 

자유 그 자체가 정의는 아니다. 자유가 있다고 정의가 수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 없이 수립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228

 

나는 자유를 원하는 것과 똑같이 간절하게 정의를 소망한다. 그래서 자유주의 국가론이라는 땅을 딛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진보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의미이다. 진보자유주의자는 어떤 가치 하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히키거나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진보자유주의는 모든 형태, 모든 종류의 절대주의를 거부한다. 242

 

제9장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자신의 영혼과 타인의 영혼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을 가지고 있다. 정치의 과업은 폭력 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246

 

칸트는 행복을 ‘우리가 갖는 모든 경향성에 대한 만족’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행복을 얻는 데 필요한 실천적 법칙을 ‘실용적 처세의 규칙’이라고 했다. 이것은 도덕법이 아니다. 도덕법은 행복을 느낄 자격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지시한다. 249 각주1, 임마누엘 칸트/정명오,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2010

 

칸트의 자유는 강제나 구속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칸트의 ‘자유’는 인간이 ‘경향성을 만족’시키는 욕구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욕구가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은 자율적 행동이 아니다. 250

 

도덕법은 순수이성의 직접적 명령이다. 인간은 경험의 도움을 받지 앟고, 다시 말해서 선험적으로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옮기면, “순수이성은 그 쟈체만으로 실천적이고 우리가 도덕법이라고 부르는 보편적인 법칙을 인간에게 준다.” 자기의 이익, 바람, 욕구, 기호, 식욕 등 ‘경향성을 만족’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행동에는 도덕적 가치가 없으며, 오로지 의무감에서 나온 옳은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 251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욕구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정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법칙을 알 수 잇는가? 우리는 이성의 도움으로 경험하지 않고서도 그 규칙을 알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이 직접적으로 그것을 명령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유명한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이다. 너 자신의 “행동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이는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잇는 준칙이라야 한다.”(정언명령1). 그리고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로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정언명령2). 252

 

칸트는 행복과 선을 다르게 보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과 입법의 원리로 삼았던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을 전면 거부한 것이다. 칸트에게 공리주의 철학은 도덕법이 아니라 ‘실용적 처세의 규칙’에 불과하다. 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면 최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도덕법의 도움이 없이는 행복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253

 

국가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라고 한 라인홀트 니버의 말을 받아들일 경우, 국가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또 행사해야만 한다. 그런데 국가의 폭력도 틀림없는 폭력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활동하는 정치인에게는 특별한 자질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베버는 좋은 정치인이 되는 데는 세 가지 자질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바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이다. 257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가 곧 붕괴할 것이라는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그가 ‘사회주의적 현재활동’이라고 불렀던 사민당의 일상적 정치활동이 제대로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붕괴의 관념을 버려야 ‘사회주의적 현재활동’이 노동자의 전투력을 대위기 때까지 보존하기 위한 임시적 수단이 아니라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회개량을 준비하는 작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266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려고 할 경우 “생산력의 엄청난 황폐화, 무의미한 실험들, 목적 없는 폭력행위 등과 같은 것만을 빚어낼 것이며,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지배는 사실상 혁명가 클럽의 폭력적 독재에 의해 지탱되는 혁명적 중앙권력의 독재형태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베른슈타인의 예측은 소비에트연방을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현실이 되었다. 268

 

베른슈타인은 민주주의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법률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오늘의 다수는 언제든 내일의 소수로 전락할 수 있으며, 따라서 소수를 억압하는 모든 법률은 일시적으로 다수가 된 사람들에게도 결국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70

 

맺음말

나는,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284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것은 헛된 기대일 뿐이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시민들이다.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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