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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by mubnoos 2023. 3. 7.


1. 마라의 죽음
ㆍ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2. 유디트
ㆍ차가 급가속을 하는 동안 그의 몸은 마치 뒤로 끌려가는 듯하다. 강한 힘이 그를 잡아당기는 것이다. 관성이다. 운동을 지속하려는 경향. 그의 몸은 머물러 있으려 하고 택시는 그를 빠른 속도로 앞으로 이동시키려 한다. 그는 여릿한 현기증을 느끼지만 불쾌하지 않다. 이 세계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그를 이동시켜왔고 지금 그에게 이 스텔라는 세상의 전부와 마찬가지. 곧 이 속도에 적응할 것이다. 그의 육체는 곧 택시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조율하고 관성의 법칙은 택시의 속도를 따를 것이다.

ㆍ사람은 딱 두 종류야.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 어느 쪽이 나쁘냐면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나빠.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

3. 에비앙
ㆍ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ㆍ나는 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어. 그의 집에서도 나는 종이옷을 입었더랬어. 단 한 사람 그를 위해서 말야. 그는 그때마다 돈을 지불하고 종이를 떼어냈어. 그러면 나는 그를 위해 일을 시작했지. 하지만 그와 섹스를 해본 적은 없어. 대신 그 남자와 사는 석 달 동안 일리터는 족히 넘을 그의 정액만 마셨을 뿐이야. 그는 결코 삽입 따위는 하지 않아. 종이옷을 다 떼어내면 나를 무릎 꿇리고 자신의 정액을 마시게 하고, 그러곤 잠드는 거야. 그때마다 난 저 에비앙 생수를 마셨어. 아마 그 남자의 집에서도 저 에비앙을 마셨을 거야. 입에서는 언제나 정액 냄새가 났고 나중에는 저 에비앙에서도 정액 냄새가 났어.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그의 정액을 모으기 시작했어. 그는 재미있어 했어. 아껴두었다가 마시겠다고 했거든. 그가 사정을 하면 그 정액을 빈 에비앙 병에 모아서 냉장고에 보관하기 시작한 거야. 드디어 그 병에 그의 정액을 가득 채우던 날, 나는 다시 종이옷을 입었어. 그는 돈을 지불하고 내 종이옷을 모두 떼어냈어. 그는 의자에 앉아 내가 무릎을 꿇기를 기다렸어. 나는 그의 등뒤로 돌아가 그에게 총을 겨눴어. 에비앙 병에 가득한 그의 정액을 그에게 남김없이 다 마시게 했어. 그는 토하더군. 그런 그를 놓아두고 도망을 나왔어. 그게 이 여행이야.


4. 미미
ㆍ몰아. 그가 늘 부러워하는 재능이었다.



5. 사르다나팔의 죽음
ㆍ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