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아무튼, 수영 <수중 우주>

by mubnoos 2025. 5. 30.

 

 

 

수중 우주

 

 

수영을 하다가 문득, 물속이 마치 우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주에 가본 적은 없지만,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우주의 모습과 물속에서 경험하는 감각들이 묘하게 겹쳐졌다. 겉보기엔 전혀 다른 두 공간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생존을 위한 유사한 조건과 기묘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호흡
우주에는 공기가 없어 호흡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속도 마찬가지다. 폐에 공기가 가득 차 있어도 잠시뿐, 끊임없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호흡해야 한다. 창세기의 하나님은 첫 번째 인간에게 호흡을 불어넣어 완성했다. 수영은 마치 지구와 우주를 왕복하며 생명에 인공호흡을 하는 행위와 같다. 우리는 하루에 2만 번 정도 호흡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3~5분 정도의 무호흡을 넘어가면 뇌가 손상되거나 죽는다. 호흡은 에너지이자 생명이다. 무리해서 수영하다 멈춰서 가쁜 숨을 고른다. 지금 이 순간 한 번의 호흡보다 더 절실한 게 있을까? 수영하며 느끼는 제한된 호흡은 생명의 유한함을 상기시킨다. 물속에서 얻는 호흡의 소중함은 결국 삶의 소중함과 맞닿아 있다. 소중함은 잃어버리기 전에는 확실히 알기 어려운 감정이다.

2. 시야
우주에서 맨눈으로는 외부를 볼 수 없다. 강력한 자외선과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헬멧과 필터가 필수적이다. 물속 역시 마찬가지이다. 맨눈으로 물속을 보면 시야가 흐려지고, 눈이 따가워 제대로 볼 수 없다. 수경은 물속 시야 확보와 눈 보호를 위한 필수 장비이다. 수경을 착용해야 비로소 물속 세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들을 인지할 수 있다. 맨눈으로 세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특별한 노력 없이 세상을 온전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3. 이동
우주에서는 중력이 없어 제대로 걸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둥둥 떠다니고, 움직이려면 추진력을 이용해야 한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간짜장면을 비비는 것은 상상만 해도 카오스다. 물속에서의 부력은 이러한 무중력과 유사하다. 땅 위에서처럼 발을 딛고 걸을 수 없다. 몸은 물에 의해 떠오르거나 가라앉으며, 균형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팔다리를 휘저어 추진력을 얻고, 몸의 자세를 미세하게 조절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마치 우주에서 유영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짜장면을 오토바이로 배달받아,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비비고 먹을 수 있는 일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우리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삶의 순간들조차도 사실은 충족된 생명의 순간들이 아닐까? 호흡하고, 보고,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있음의 충분조건들을 별다른 노력 없이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생명의 조건들은 유한하다는 것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의도치 않은 사고와 우연히 모인 먼지 덩어리에 불과했던 지구는 결국 다시 별의 조각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그때의 우린 우주에서 수영하게 될까? 제한된 호흡 속에서 평온을 유지하고, 중력을 거스르며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수영은, 언젠가 맞이할지 모를 우주에서의 유영을 위한 완벽한 예행연습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