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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금정연

mubnoos 2025. 2. 24. 16:20

 
 


 
 •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건 괜찮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건 안된다. 왜냐하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서다.

• 요즘 내가 쓰는 일기는 네 가지다. 사거나 잃거나 잃어버린 책들에 대해서, 아직 세 돌이 되지 않은 아가와 함께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해서, 새로 샀거나 사고 싶은 오디오 기기와 레코드에 대해서, 딱히 분류할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과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어둡고 축축한 마음의 바닥에 대해서... 거기에 더해 또 하나의 일기를 쓰겠다고 연재 제안을 수락한 건 내게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 무라카미 류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의 가장 큰 불안은 알코올중독자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알코올중독자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은 실제로 알코올중독자가 됨으로써 벗어날 수 있다나 뭐라나.

• 로또를 사는 건 단순히 숫자가 적힌 종이를 사는 게 아니다. 일종의 설렘을 사는 거라고 할까?

• 따라서 물건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돈을 잘 쓰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할 뿐.

• 한꺼번에 다 하겠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게 겁나는 일이다. 소설이 그렇듯, 시험이 그렇듯, 하지만 한 시간씩, 매일 하루씩 해 나가다 보면 삶도 가능해진다.

• 고독이 하나의 도전이며 그 안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게는 사람들과, 심지어 사랑하는 한 사람과도 얼마만큼의 시간이든 고독 없이 함께 지낸다는 것은 훨씬 더 안 좋은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흐트러지고, 조각나서 흩뿌려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어떠한 사건이든 그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것의 즙액을, 그 에센스를 추출해 내고, 그 결과로서 정말로 내게 일어난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 지금은 완벽한 책을 쓰거나 완벽한 영화를 만들 때가 아니다. 지금은 닳고 닳은 기술들, 이름들, 주제와 형식들에서 벗어날 때다. 그건 고명하신 기술과 이름들에 정중한 존중을 보내면서가 아니라 가볍게 무시해야만, 심지어 그들의 코앞에서 비웃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움직임과 리듬과 빛과 기술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빌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오만하다.

• 글을 쓸 땐 미끄러져 나가는 기분으로 써야 한다. 말들은 절뚝거리고 고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미끄러져 나가기만 한다면 문득 그 어떤 즐거움이 모든 걸 환히 비추게 된다. 조심조심 글을 쓰는 건 죽음과 같은 글쓰기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따뜻함과 밝음, 햇빛을 누리고 싶어 하지만, 탐험가의 일상은 어둠과 푹풍과 차가움의 경험뿐이다.

• 근데 다 그냥 될 거 같은데? 편히 마음먹어 안 급해. 헤드폰에서 이센스가 노래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배우고 욕망하고 느끼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물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본문 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