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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mubnoos 2025. 5. 19. 09:16

 

 
 
 
 

 
 
 

제1회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


• 소설가의 대부분은 원만한 인격과 공정한 시야를 지녔다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또한 보아하니, 칭찬하기 힘든 특수한 성향이며 기묘한 생활 습관이며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작가는 (대략 92%일거라고 하는 예상하는데) 그걸 실제로 입 밖에 내느냐 마느냐는 제처두고, 내가 하는 일, 내가 쓰는 글이 가장 올바르다. 특별한 예의를 제외하고 다른 작가들은 많든 적든 모두 틀려먹었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에 준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런 자들과 친구나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극히 조심스럽게 표현해서, 그리 많지 않은 거 아닐까요.

• 작가들끼리 돈독한 우정을 쌓고 있다는 말이 이따금 들려오는데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대체적으로 깜빡 속지 말아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친밀한 관계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을 걸, 이라고 말이죠. 작가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인종이고 역시 자존감이나 경쟁의식이 강한 사람이 많아요. 작가들끼리 붙여놓으면 잘 풀리는 경우보다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나 자신도 몇 번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 재능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뛰어난 작품을 써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나만 해도 소설을 쓰기 위해 훈련이라고는 전혀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작정도 딱히 없었고 미친 듯이 습작을 써본 적도 없이, 어느 날 불현듯 생각이 나서 첫 소설을 썼고 그걸로 문예지 신인상을 탔습니다. 그리고 뭐가 뭔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직업적인 작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거야? 하고 나 자신도 저절로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간단하잖아.

• 소설이라는 건 누가 뭐라고 하든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폭넓음이야말로 소설이 가진 소박하고도 위대한 에너지의 원천의 중요한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건 내가 보기에는 소설에게는 비방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입니다. 즉,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입니다. 로프는 틈새가 넓고 편리한 발판도 준비되었습니다. 링도 상당히 널찍합니다. 참여를 저지하고자 대기하는 경비원도 없고 심판도 그리 빡빡하게 굴지 않습니다. 현역 레슬링 선수도 그런 쪽으로는 애초에 어느 정도 포기해버린 상태라서 좋아요, 누구라도 다 올라오십쇼 라는 기풍이 있습니다. 개방적이라고 할까, 손쉽다고 할까, 융통성이 있다고 할까, 한마디로 대충대충입니다.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소설가는 물론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사람은 일단 못할 짓. 이라고 말해버려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뭐랄까, 어떤 특별한 것이 점점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나름의 재능은 물론 필요하고 그만그만한 기개도 필요합니다. 또한 인생의 다른 다양한 일들과 마찬가지로 운이나 인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어떤 종류의 자격 같은 것이 요구됩니다. 이건 갖춰진 사람에게는 갖춰져 있고,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이 갖춰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후천적으로 고생고생 해가며 습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몹시 둔해빠진 작업입니다. 거기에 스마트한 요소는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립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하루 종일 단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잘했어, 잘했어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입니다. 책이 나왔을 때,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인 것입니다.


 


제2회 소설가가 된 무렵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할까, 인생 설계란 웬만해서는 예정대로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  소설을 쓸 때 문장을 쓴다기보다 오히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머리로 문장을 쓴다기보다는 오히려 체감으로 문장을 쓴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리듬을 확보하고 멋진 화음을 찾아내고 즉흥연주의 힘을 믿는 것.

•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3회 문학상에 대해서


• 책을 읽는 습관이 일단 몸에 배면 그리 쉽사리 독서를 내던지지 못합니다.

• 내가 진지하게 염려하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흔해빠진 대답이라서 죄송하지만, 이건 역시 소설을 쓰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빠뜨릴 수 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게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졌는지, 그것을 기본부터 체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달걀을 깨야 한다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당연한 얘기지요.  
 


제6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장편소설 쓰기


•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실감을 믿기로 하십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그런 건 관계없습니다. 글을 쓰는 자로서도 또한 그걸 읽는 자로서도 실감보다 더 기분 좋은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7회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業


•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밀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없이 개인적인 일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지점에서 가공의 이야기를 일궈내고 그것을 문장의 형태로 바꿔나갑니다. 형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주관적인 일들을 형상이 있는 객관적인 것으로 변환해간다. 극히 간단히 정의하자면 그것이 우리 소설가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작업입니다.

•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 tell a stoty 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어두운 밑바닥으로 하강한다는 것입니다.

• 나는 소설을 쓴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소설을 쓰고 거의 이것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실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생의 어느 시점에 파격적인 행운이 없었다면 이런 건 도저히 달성하지 못했겠지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행운이라기보다 거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제8회 학교에 대해서


• 개인적인 얘기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학교 시절의 나에게 가장 큰 구원은 그곳에서 몇몇 친구를 사귄 것, 그리고 많은 책을 읽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무튼 실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불타는 가마에 삽으로 푹푹 퍼 넣듯이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읽었습니다. 책을 한 권 한 권 맛보고 소화해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서 그것 이외의 일에 대해 머리를 굴릴 만한 여유는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만약 책이라는 게 없었다면, 만일 그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썰렁하고 뻑뻑한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나에게는 독서라는 행위가 그대로 하나의 큰 학교였습니다. 나는 거기서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몸으로 배워나갔습니다. 까다로운 학칙도 없고 수치에 의한 평가도 없고 격렬한 순위 경쟁도 없었습니다. 물론 따돌림 같은 것도 없습니다. 나는 커다란 제도 안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책을 통해 그러한 나 자신만의 별도의 제도를 멋지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제9회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

• 소설을 쓰려면 무엇이 어찌 됐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라는 얘기와 동일한 의미에서, 인간을 묘사하려면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소설을 쓰면서 내가 가장 즐겁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 동시에 소설에 의해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10회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 딱히 누군가를 위해 소설을 쓴다는 의식이 내게는 애초에 없었고 지금도 딱히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쓴다 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1회 해외에 나간다. 새로운 프런티어


 


제12회 이야기가 있는 곳ㆍ가와이 하야오 선생님의 추억



• 다만 한 가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는 기본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분명 소설을 쓰는 자질 같은 건 원래부터 약간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점을 별도로 한다면,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좀 그렇지만 나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이다.